햇살의 분별력
햇살의 분별력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8.19 1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 읽는 세상

안도현


감나무 잎에 내리는 햇살은 감나무 잎사귀만 하고요
조릿대 잎에 내리는 햇살은 조릿대 잎사귀만 하고요
 
장닭 볏을 만지는 햇살은 장닭 볏만큼 붉고요
염소 수염을 만지는 햇살은 염소 수염만큼 희고요
 
여치 날개에 닿으면 햇살은 차르륵 소리를 내고요
잉어 꼬리에 닿으면 햇살은 첨버덩 소리를 내고요
 
거름 더미에 뒹구는 햇살은 거름 냄새가 나고요
오줌통에 빠진 햇살은 오줌 냄새가 나고요
 
겨울에 햇살은 건들건들 놀다 가고요
여름에 햇살은 쌔빠지게 일하다 가고요
 
※ 사물의 거울이 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보여지는 대로 투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보이는 대로 보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눈에는 햇살의 분별력이 낯설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나뭇잎이나, 장닭의 볏이나, 잉어의 꼬리나, 오줌통이나 사물의 크기 만큼만 담아내는 햇살을 시를 통해 다시 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