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
  • 김덕희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 승인 2015.08.1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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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김덕희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교황을 태운 비행기가 로마를 향해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살아졌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TV를 바라보다가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손가락하나 까딱하기가 싫었다. 거구를 이끌고 그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낼 그런 거리를 비바 파파를 연호하며 교황을 맞으러 꽃동네에 다녀온 탓도 있다. 그러나 교황이 탄 비행기가 서울하늘에서 멀어지면서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없는 허탈감에 빠졌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교황이 지나실 통로 옆에서 서너 시간을 기다린 끝에 아주 잠간 모습을 뵐 수 있었다. 해맑은 미소로 어린아이들과 입맞춤하는 교황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평화와 사랑에 빠져들게 했다.

교황은 정확히 98시간 30분을 우리나라에 머무르셨다고 한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 신앙인들은, 아니 우리국민들은 정말 색다른 경험을 했다. 선(善)과 사랑을 향한 의지가 얼마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또 삶에 대한 희망을 부여하는지를 말이다. 진정 교황의 방문은 우리에게 희망이었다. 124위의 광화문 시복식은 물론 교황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초유의 인파가 그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번에 교황께 종교를 초월한 여러 가지 나랏일에 대한 구세의 역할까지를 바랐던 것 같다. 세월호 가족이 그랬고, 위안부 할머니와 쌍용차해고노동자, 그리고 밀양 강정마을 주민들이 그랬다. 그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오로지 소통이 아니던가.

우리는 4박5일 동안 교황의 한없는 인간애에 감동하면서 소외되고 가난한자와 어린아이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보았다. 그렇게 교황은 진정한 지도자의 리더쉽과 큰 어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셨다. 교황을 면전에서 만났던 어느 평신도회장은 “눈앞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같았으며, 교황의 성스러운 얼굴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났다.”며 그의 생애 최대의 행운이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것은 교황의 삶에서 묻어나는 겸손, 희생, 봉사,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자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떠나셨다.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갈릴레아 사람들아,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1,11)라는 말씀이 귓전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대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권고에서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근본적인 2가지의 과제는 첫째가 “가난한 이들의 통합”이고 둘째는 “평화와 사회적 대화”(85항)라고 했다. 따라서 나부터 하느님의 사랑과 부르심에 순교의 영성으로 응답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역대 266분의 교황이 있었지만 우리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교황은 우리나라에 두 번이나 오셨던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과,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은 여의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꽃동네에서 먼발치에서나마 뵐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있어서도 크나큰 행운이다. 79세 고령의 연세로 4박5일 동안 빡빡한 일정을 소화시키는데 최선을 다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입이 아닌 실천으로 무엇이든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작년 이맘때 한반도 전역을 뜨겁게 휘몰아쳤던 그 감동의 4박5일! 그래서 한 여름의 열기조차 서늘하게 만들었던 그 순간들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오른다. 1년이 지났지만 교황이 남긴 말씀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회개와 쇄신의 디딤돌을 마련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려는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다. 진정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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