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무라카미하루키 저, 비채 2012년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무라카미하루키 저, 비채 2012년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5.08.1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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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들이 있다. 움직이는 것도 귀찮고 먹는 것도 귀찮다. 무료하지만 신경이 곤두서거나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기엔 심심하다. 거실에 편안히 누워 리모컨을 꾹꾹 눌러대도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어 이리 저리 몸을 구르며 ‘아~ 따분해’라고 외칠 뿐이다.

‘로맨스 소설이나 만화책을 가볍게 읽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그만 핸드폰 화면으로 읽기엔 눈이 아프고 컴퓨터 화면으로 읽기 위해 책상 앞에 앉는 것도 귀찮다. 그렇고 그런 날에는 책 욕심에 사두고 책장에서 고스란히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책을 뒤적이게 된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읽은 책이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무라카미 하루키 저, 비채)…다. 생각 없이 읽기에 딱 좋다. 너무 시시해서 이런 걸 책으로 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시시함과 가벼움이 이 책의 묘미다. 책 머리말에서 작가가 “나의 본업은 소설가요, 내가 쓰는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맥주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나는 맥주를 못마셔서 우롱차밖에 안 마셔 하는 사람도 많으니, 이왕 그렇다면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우롱차를 목표로 하겠습니다.”말한 것처럼 소설의 맛이 아니라 우롱차의 그 심심한 맛이 나는 책이다.

‘꿈을 좇지 인생이란 채소나 다름없다’라고 말하는 타인의 말에서 ‘채소는 어떤 채소를 말하는 것인지, 채소마다 사정이 있을텐데 채소의 기분은 어떨지’를 생각하는 하루키의 글에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한다. 여백 가득하고 익살스런 일러스트가 있어서 쉽게 넘길 법하지만 작가가 던진 그 말을 곱씹고 곱씹어 본다. 우리가 일상을 재미없다고 느끼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의 편견과 시각으로 모든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사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사소하거나 무시하거나 지나쳐버리는 것이 아닐까? 전문커피숍에서 들고 나온 종이컵 한잔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텐데 말이다. 일상을 비틀어보거나 타인의 관점 혹은 사물의 관점에서 일상을 바라보면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귀찮고 어렵기만 한 일도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만의 재미난 놀이가 생길 수도 있다.

유명 소설가의 “나는 제자들에게 카페에서 커피마시면서 할 수 있는 일 100가지를 적어오라는 숙제를 냅니다. 그 100가지 일 중에 소설로서 가치 있는 일은 23번째 이상 넘어가야 나옵니다.”말을 들었다. 그 만큼 우리의 일상과 일반적인 생각은 소설의 소재도 되지 못할 만큼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가끔은 하루키처럼 일상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매일 무심히 손에 잡히는 젓가락의 마음도 이해해보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일 50가지도 생각해보고 말이다.

그렇다면 반복적인 일상이 지루해지는 그런 날에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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