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내음
풀 내음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8.1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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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 이효순 <수필가>

산책길 주변이 깨끗이 정리되었다. 상큼하게 코를 자극하는 싱그러운 풀 내음에 발걸음이 멎는다. 예초기에 잘려나간 마른 풀들이 산책길 주변에 널브러졌다. 잘린 상처가 아물며 시드는 냄새. 어릴 때 고향에서 아버지 지게에 가득 실려오던 그 풀냄새다. 그리고 산소 벌초할 때 나던 그 내음이다. 가끔 풀 내음이 내게 올 땐 유년의 기억에 젖는다.

아버지는 입추가 가까워오면 논둑과 밭둑에 있는 풀을 낫으로 베셨다. 그리고 그것으로 시골집 앞마당의 두엄더미를 넓게 채우셨다. 그곳에는 돼지우리와 외양간에서 나온 배설물이 집안의 농산물 쓰레기와 함께 모여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앞마당에 나오면 어느 땐 그 두엄더미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를 때도 있었다. 거의 자연의 냄새이어서인지 그리 싫진 않았다. 그럴 땐 아버지께서는 두엄 뒤집는 작업을 하셨다. 그래서 그것이 해를 넘기고 숙성되면 이듬해 봄 논밭의 거름으로 이용하셨다. 퇴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료를 많이 사용하기 전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친환경 농법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왜 풀을 베어 지게에 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오시는지를. 

아버지께서 논과 밭두둑 주변에 풀을 깎으면 이제 추석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논에는 벼가 가득해 초록의 비단 물결을 이루고 논둑엔 쥐눈이콩 싹만이 말끔해진 울타리처럼 촘촘히 서 있었다. 그때의 싱그러움은 눈으로 달려들고 풀 내음 또한 정겨웠다.

풀 내음은 왜 내 발길을 잡는 걸까.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있는 그때가 그리워지는 걸까. 내게 세월의 무게만큼 더해지는 나이 탓일까.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느 것에 사로잡힌다. 풀냄새만 피어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작은 흙벽돌집과 우리 집의 앞마당. 한쪽 옆에 있었던 두엄더미. 마당 끝엔 내가 좋아하는 코스모스를 심고 가을을 기다렸다. 그리고 파란 하늘 아래 잠자리를 잡으며 가을을 보냈다.

풀 내음 속에 감추어진 고향은 아직 내 마음에 생생하다. 아버지께서는 볏짚을 썰어 진흙에 섞어 흙벽돌을 직접 찍으셨다. 황토 흙이었다. 찍은 벽돌이 햇볕에 다 마르자 그것으로 흙벽돌집을 지으셨다. 집이 완성되었을 때가 여름이었다. 그 집을 지어 이사한 후 열흘이 채 되기 전이었다. 3학년인 남동생이 익사 사고로 그만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흙벽돌집으로 이사했을 때 남동생은 찰흙으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지금도 아련한 내 기억 속에 남은 모습은 아주 잘 만든 거북선이었다. 남동생은 그렇게 거북선을 하나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고 어머니의 가슴에 가득 슬픔을 남겼다. 동생이 간 이후 어머니는 늘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셨다. 늘 생때같은 아들 앞세워 보내고 사는 것이 영 마음이 불편하셨나 보다. 사람들이 우리 집은 아들 둘, 딸 둘 알맞다는 말을 많이 하더니 그만 탈이 난 것이다.

부모님 두 분이 밭에 가면 그 동생이 어머니의 허연 광목 치마를 머리에 쓰고 하던 놀이가 아직도 생각난다. “알 났도다. 아기 났도다” 그 말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즐겁던 4남매.

풀 내음에 묻어나는 그리운 얼굴들.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아직도 내 발길에 밟히는 마른 풀들. 그 풀 내음에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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