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기 여성광복군 대한민국 탄생 초석 다지다
제1기 여성광복군 대한민국 탄생 초석 다지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8.12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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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여성광복군 신순호 이야기

16세때 독립운동 투신 … 신채호 등 가풍 영향 한몫

광복군 창설후 여군 입대 … 전략 첩보활동 등 전개

1943년 남편과 `청년공작대' 가입 선무공작 펼쳐

광복후 부친의 고향 가덕 정착 … 도서관 지어 기증

 

영화 ‘암살’에서 여배우 전지현은 여성광복군으로 활약한다. 저격수로 일본과 맞서는 모습은 남성을 압도한다. 이처럼 조국의 해방을 위해 전장의 최일선에 섰던 사람 중에는 여성광복군이 있었다. 남성에 가려 이름도 채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광복군의 암약은 분명 대한민국 탄생에 초석을 다졌다.

충북 청주 출신인 신순호는 여성광복군 1기생이다. 신채호를 비롯해 신홍식, 신규식 등 청주 고령 신씨 집안의 여성으로 가풍에 영향을 받고 16세에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지역에서조차 신순호의 이름은 낯설다. 이에 광복 70년을 맞아 여성광복군 신순호의 궤적을 조명해본다.

신순호(1922~2009)는 독립운동가 신건식(申建植)의 외동딸이자 신규식(申圭植)의 조카다. 아버지 신건식은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리에서 출생했다. 이곳은 고령신씨의 집성촌으로 고령신씨는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명문 가문이다.

신순호는 1926년 다섯살에 청주를 떠나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 중국으로 건너갔다. 할머니, 둘째 큰어머니, 어머니와 함께 인천에서 배를 타고 항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났으며, 아버지를 따라 상하이, 영파, 난징(南京)으로 옮겨 다녔다.

가풍에 영향을 받은 신순호는 아버지를 따라 독립운동에 나섰다. 1938년 8월 당시 16세의 신순호는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 청년공작대(靑年工作隊)에 입대해 중국과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되자 오광심(吳光心)·김정숙(金貞淑)·조순옥(趙順玉) 등과 함께 여군으로 입대했다. 그의 나이 꽃다운 18세였다.

여성광복군은 군 복무 수당을 받으면서 남성들과 똑같이 초모공작, 교육과 훈련, 선전, 한미군사합작과 전략첩보활동, 국내진입작전과 정진대 활동 등에 참가했다.

신순호는 1942년 9월에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로 파견되어 근무했고, 1943년에 외무부 정보과에서 활동하다 남편 박영준과 결혼한다.

남편 박영준(1915∼2000)은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중국과 핵심적인 외교활동을 펼쳤던 박찬익(朴贊翊)의 셋째 아들이다. 15세 때인 1930년 상하이로 아버지를 찾아 나서며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아버지의 뜻에 따라 1938년 류저우(柳州)에서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 위원회에 가입해 청년공작대(靑年工作隊)를 조직했다. 반일사상 고취를 위한 항일연극·합창·강연·전단배포 등의 선무공작(宣撫工作)을 펼쳤다. 두 사람의 인연은 박영준이 아버지를 찾아 상해로 온 후 신순호의 집에 한동안 머물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서는 동지로 같이 활동했다.

또한 신규식과 박찬익은 의형제까지 맺은 절친한 사이였으며 박찬익이 가족과 떨어져 투병 중일 때 신순호의 모녀가 함께 간호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1943년 12월 12일 충칭(重慶) 오사야항(吳師爺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강당에서 열렸다. 임시정부 요원들과 한인 동포들이 하객으로 참석한 가운데 당시 외무부장인 조소앙의 사회를 보고, 백범 김구가 주례로 나섰다. 또 조완구·김원봉·김성숙 등 각 당 대표들이 축사에 나서 부부 독립운동가의 탄생을 축하했다.

신순호는 남편에 대해 “당시 임정 지도자들이 한데 모여 살았기 때문에 자녀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분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정열적이었다”고 회고했다.

해방 후 귀국한 신순호는 한동안 김구의 경교장에서 1년 가까이 함께 머물렀다. 김구와의 인연은 1938년 조선혁명당 주최로 열린 회의에서 이운환이 회의석상에 총격을 가해 김구가 중상을 입었는데 이를 신순호의 어머니가 간호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1977년 건국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해방 후 신순호의 삶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2006년 신순호는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고향인 청주 가덕면 인차리 가덕중학교에 도서관을 지어 충청북도교육청에 기증했다. 현재 가덕중학교 교정의 동쪽에는 1980년에 세운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신홍식(申洪植)의 동상이 있고, 학교의 북쪽에 신순호가 사재를 털어 건립한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을 삼강도서관(三岡圖書館)이라 명명했는데 이는 아버지 신건식의 호를 딴 것이다. 2009년 7월 30일 여성광복군 신순호는 향년 87세로 별세했다.(자료 발췌: 충북여성 인물사 중 여성광복군 신순호-강민식)

신순호의 삶은 여성이 광복군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중국에서 펼친 조국사랑은 해방 후 고향인 가덕중학교에 삼강도서관을 건립해 기증함으로써 광복군의 신념과 의지를 보여주는 표상이 되고 있다.

/연지민기자

yeaon@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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