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독립과 광복절 그리고 단재 신채호 선생
역사 독립과 광복절 그리고 단재 신채호 선생
  • 김명철 <청주서경중학교 교감>
  • 승인 2015.08.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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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 김명철 <청주서경중학교 교감>

올해 우리나라는 광복 70년, 일본은 패전 70년, 그리고 한일수교 50년, 을사늑약 110년을 맞는 의미 깊은 해다. 일본은 매일같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각종 망언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최근엔 평화 헌법 개정을 통한 재무장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역사는 진실된 눈으로 기록해야 하고, 왜곡하거나 치우쳐서는 안 되며, 과장하거나 미화해서는 안 됨에도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의 왜곡은 제국주의 침략 전쟁과 전쟁 중에 일으킨 범죄 행위, 난징 대학살, 731부대의 생체 실험, 종군위안부, 징병, 징용 등을 최소화하거나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침략 행위가 근대화에 기여한 것처럼 왜곡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역사 연구 입문서인 ‘역사학개론’에 등장하는 첫 번째 질문이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역사 이론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소위 실증주의 사학이라는 것이다. 랑케를 대표로 하는 이 역사 이론은 명확하다. 역사가의 임무는 과거를 ‘원래 있던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가 역사를 서술할 때는 자신의 주관이나 관념들을 배제하고 최대한 사실만 기록하려고 해야 한다. 역사가는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를 모으고 그것을 고증해야 하기 때문에 실증주의 역사관이라 한다.

반면에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갗라는 책을 통해 랑케와는 전혀 다른 역사관을 나타낸다. 역사적 사실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역사가가 불러줄 때만 말을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어떤 순서와 선별, 정리, 강조에 관한 권한은 전적으로 역사가에 의해 결정 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이처럼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명제에 대한 수많은 역사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아와 비아와의 투쟁의 기록이다”라고 정의했다. ‘아’는 나를 말하고 ‘비아’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말한다. 역사는 곧 나와 다른 사람의 투쟁의 기록으로 본 것이다. 나라를 빼앗겼던 암울했던 시절, 사람 만이 희망이라 여겼던 선생은 역사만이 희망임을 강조했다.

그는 왜 역사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

독립의 희망이 희미해 질 때였으나, 역사 속에서 민족의 희망과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은 단군조선이 건국될 때부터 우리민족의 주 활동무대는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 땅이라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국한돼 있던 우리 역사의 무대를 만주까지 넓혀놓았던 것이다. 선생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통해 민족의 웅장했던 역사를 찾아냈고 독립 운동가들에게도 만주가 남의 땅이 아니라 우리의 옛 땅이고, 이곳에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강조했다.

청주에서 보은 가는 국도, 단재 선생의 이름을 딴 충북단재교육연수원이 있다. 이곳에서 미원 쪽으로 산모퉁이를 돌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 어린 시절 학문을 연마하고, 성장했던 고향마을 ‘고드미’이다. 민중의 의식 독립을 통한 조국의 완전 독립이란 희망을 바라보았던 선생의 묘소와 영당,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만이 희망이다.”라는 명제를 가슴에 안고 실천적인 삶을 살았던 단재 신채호 선생. 선생은 갔지만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은 우리들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다.

광복 7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진정한 조국의 광복은 이룩되었는가?” “완전한 역사 독립을 이루었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선생의 추상같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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