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 폐지해야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 폐지해야
  • 염명천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
  • 승인 2015.08.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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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염명천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 현금이나 신용카드나 같은 값을 치른다. 이때 신용카드는 은행계좌에서 약 한 달 뒤 돈이 인출되므로 소비자는 신용카드 결제가 유리하다. 상인은 매출액의 약 2% 정도를 카드사가 카드수수료로 가져가므로 현금 판매가 유리하다. 따라서 현금결제 고객에게 상인은 2% 정도를 할인해줄 수 있다. 거래 양측이 모두 좋다. 대한민국 전체로 이것이 적용되면 거래 활성화와 큰 소득 증대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신전문금융업법(제19조)은 카드 결제와 현금 결제 간 금액 차별을 못 하게 막고 있다. 이 차별금지조항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과거 현금 거래와 탈세가 만연하던 시절 카드 사용 활성화와 조세 징수 편의를 위해 설치됐다.

첫째 목적은 현재 충분히 달성됐고, 둘째 목적은 현금영수증 발행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 조항의 취지는 이제 퇴색했다. 이제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9조는 상인과 소비자 부담으로 카드사를 먹여 살리는 기능만을 한다.

문제는 단순한 소득 이전이 아니라 거래 왜곡으로 그 이전 금액의 수배에서 수백 배 순손실(dead loss)을 국민경제에 준다는 점이다. 오래전에 폐지됐어야 옳다.

그런데도 지난 2012년 정해진 현행 카드 수수료율의 재산정 작업이 오는 10월 발표를 목표로 카드업계 주도로 진행 중이다.

현 국내 카드 수수료율은 1.5~2.7%이고, 지난해 실적평균은 2.1%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 비교대상국 보다 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 호주는 우리나라의 차별금지조항과 유사한 조항을 폐지하자 시장에서 형성되는 카드 수수료율이 절반으로 낮아졌다. 그렇다. 시장에서 정해질 수수료율은 현재의 대략 절반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카드 수수료율 발표를 앞두고 과거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업종 단체, 중소 영세상인, 대형 가맹점, 전통시장, 병원, 대학, 요양기관 등은 각자 조금이라도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받으려 카드사를 향해 치열한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특정업종에 혜택을 주는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당기순익이 2012년 1.3조원, 2013년 1.7조원, 2014년 2.17조원으로 급등하는 카드업계는 2012년 이후 금리의 대폭 인하에도 불구하고 수수료 인하 요인이 별로 없다고 주장한다.

카드업계는 제비용을 모두 합쳐 카드수수료율에 반영하면 된다. 어느 업종의 인하 로비가 강하면 수수료율을 조금 낮춰주고, 다른 업종을 올리면 된다. 이 편안한 권력의 기반은 OECD 회원국 중 한국에만 있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9조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오래전부터 강조하고 있지만, 기업의 체감도는 상당히 낮다. 잔가지 수십 개를 걷어내고 또 걷어내고, 대통령이 아무리 강조하고 강조해도 소용없다. 숨겨진 대들보 규제가 온존하기 때문이다.

전국 신용카드 가맹점 각자는 자신이 속한 업종이 이웃보다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받으려는 미시적 경쟁에 몰입하지 말고,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9조 자체를 폐지하는 데 노력을 합쳐야 한다. 정부는 카드수수료율을 적정하게 정하기 위해 쓸데없이 애쓰지 말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

이것이 규제완화다.

각 카드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각양각색일 것이니 카드사는 거기에 알맞은 수수료율을 정해 출시해 시장에서 소비자 선택을 받으면 된다. 어떤 카드는 부가서비스가 좋으면서 수수료율이 높을 것이고, 어떤 카드는 부가서비스가 거의 없는 대신 수수료율이 낮을 것이다. 또 수수료율이 극도로 높은 카드는 비싼 외제 차처럼 그것을 소지하는 위신과 과시의 재미도 있을 것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9조를 폐지해야 이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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