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카페에서
밤의 카페에서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08.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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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잠을 설쳤다. 책을 읽지 못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알람을 맞춰놓고 깨서 활자에 눈을 밀어 넣었다. 그러다 졸음이 몰려오면 슬며시 자다가 화들짝 놀라 깨서 책을 읽고, 졸리면 잠시 벽에 기대어 자다 일어나서 비몽사몽 간에 읽고 또 자고를 밤새 반복했다. 프랑스 소설이다. 스토리도 플롯도 없이 작가의 시선이 닿는 곳에 놓여 있는 것들을 멋대로 묘사해 놓은 것이다. 내일 토론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오늘 다 읽어야 한다는 결론이 선다. 집중이 안 된다. 모자를 눌러 쓰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책을 펼치고 카푸치노를 한잔 주문한다.

어스름 저녁이 소리 없이 아스팔트 위를 적시는 것을 카페 구석 창가에서 내다본다. 상점의 네온 불들은 하나 둘 점등식을 하고 카페의 음악 소리에 덮여 창밖 거리는 고요하게 흐른다. 카페 유리 창밖으로 비친 세상에 중년의 아낙이 들어선다. 장을 봐서 손수레에 끌고 집으로 향하고 있는 듯 그녀의 손수레가 무거워 보인다. 잠시 후 젊은 아낙이 등장한다. 그녀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신호등을 기다린다. 차들은 전조등을 켜고 미끄러지듯 도로를 달리고 난 창밖에 무심히 시선을 던진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에디트 피아프의 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를 귀에 담으며, 새처럼 자유로웠던 그녀의 삶과 아픈 사랑을 짐작해 본다.

카페 주인 여자가 문을 밀고 나간다. 길가 나무 옆에 쓰레기봉투를 놓는다. 쓰레기를 버리는 그녀를 카페 창을 통해 본다. 참새처럼 작은 체구에 커다란 눈망울의 그녀가 쓰레기를 버리고 위를 쳐다본다. 이팝나무가 잔잔하게 잎새를 흔들며 저녁을 맞고 있다. 바람이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았다 올라붙었다 하며 잎 새를 뒤집었다 엎었다 한다. 난 카페 의자에 멈춰 창밖 저녁을 보며 유난히 작았다는 프랑스 여가수와 무랑루주를 떠올린다. 카페의 저녁이 샹송에 덮여 조용히 밤으로 흐르고 있다.

잠시 책에 얼굴을 묻는다. 고개를 들어 다시 창밖을 본다. 창밖은 새까맣다. 아슴아슴하던 좀 전 거리의 풍경은 오간 데 없고, 어둠의 입자가 창에 덕지덕지 붙어서 밖이 보이지 않는다. 밤의 창은 밖이 아닌 안을 반사시켜 보여준다. 검은 창 속의 주인 여자가 테이블에 앉아 웃고 있다. 남편이 온 것일까? 그녀의 옆에 남자가 있다. 두 명의 손님이 문을 밀고 나가고 유리창에 비친 그녀와 남자가 뭔가를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저들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알까? 그저 내가 창밖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작은 새처럼 재잘거리며 웃는 그녀의 모습이 예쁘다.

남자의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받던 남자가 갑자기 창밖의 까만 거리로 뛰쳐나간다. 그녀가 아무 말도 못하고 오들 거리고 있다. 그녀의 커다란 눈에 슬픔이 번져 볼 위로 흘러내린다. 한 잎의 꽃 같은 그녀가 그저 소리 없는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아픔의 무게가 힘에 겨운지 이내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그녀가 어깨를 들썩인다. 흔들리는 그녀의 가냘픈 몸에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어떤 사연이기에 저토록 처절하게 울까? 그녀의 슬픔의 무게는 얼마 만큼일까?

그녀에게도 장밋빛 날들이 있었으리라. 한 손으로 들면 먼지처럼 들어 올려질 것처럼 작은 그녀에게 장미빛 인생이 오기를 바라며 소리 없이 카페 문을 열고 어둔 밤거리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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