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산속의 일탈
여름 산속의 일탈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8.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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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여름 더위가 찾아오면, 처음에는 사람들은 그것을 피하려고 시원한 그늘을 찾기도 하고 부채질을 하기도 하고 찬 음식을 먹기도 하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다 보면, 사람들은 이도 저도 대책 없이 심신이 지쳐버리고 만다. 이럴 때는 남의 이목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시원한 곳을 찾아가 아예 옷을 벗어 던지고 시원한 바람을 쏘이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도 그러한 방법으로 지독한 무더위를 견디었다.

◈ 여름날 산속에서(夏日山中)

懶搖白羽扇(라요백우선) : 흰 깃털 부채도 권태로워
裸袒青林中(라체청림중) : 푸른 숲에서 웃통 벗는다
脫巾掛石壁(탈건괘석벽) : 두건 벗어 바위에 걸고
露頂洒松風(로정쇄송풍) : 맨머리로 솔바람 맞아본다

※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것 중의 하나가 새의 깃털이다. 그렇게 가벼운 깃털로 만든 부채니만큼 아주 가벼울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한여름 무더위에 지치다 보면 이렇게 가벼운 깃털 부채도 천근만큼 무겁고 귀찮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하얗게 빛이 나는 것이라서 가볍고 시원한 느낌이 훨씬 더한 백우선(白羽扇)인데도, 이마저도 싫다면 시인은 아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그렇다고 시인이 무더위를 무작정 견디기로 한 것은 아니다. 이미 산속에 들어와 있던 차였는데, 이런저런 체면치레로 의관을 정제한 채 백우선(白羽扇)을 부치면서 그럭저럭 더위를 피하던 터였다. 그러나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지금은 백우선 부치기도 귀찮아졌다. 그래서 체면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웃통을 훌러덩 벗어버렸다. 머리에 두르고 있던 두건은 벗어서 바위벽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맨살이 된 이마로 솔바람을 쏘였다. 웃통을 벗어 버리고 머리를 감싸고 있던 두건을 풀어 바위에 걸어 버렸으니 몸이 시원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초목이 우거질 대로 우거진 깊은 산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도회지에 있는 것보다 몇 배는 시원할 터인데, 하물며 웃통도 벗고 두건도 풀고 게다가 솔바람까지 불어주니 물리적인 그 시원함이라야.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심리적인 부분일 것이다. 시인을 지치게 한 것은 한여름 계속된 무더위만은 아니었고, 세속적 예교에 얽매인 삶의 자세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무더위를 기화로 과감히 정신적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었으니, 그 심리적 시원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더위에 지칠 대로 지치고 나면, 사람들은 매사에 의욕을 잃고, 심지어는 부채질마저 성가시게 느껴지기 쉽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발상의 전환이다.

평소 남을 의식하던 옷차림을 과감히 버리고, 과감하게 시원한 복장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아예 웃통을 벗는 것도 이럴 때는 나무랄 일이 아니다. 여기에 심리적인 일탈이 더해지면 시원함은 배가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남의 이목으로부터 자유롭고 시원한 그늘과 바람이 있는 산속은 여름에 일탈을 통해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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