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다시 빛나는 세상을 위하여
광복 70년, 다시 빛나는 세상을 위하여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08.0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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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토요일과 겹치는 바람에 ‘노는 날’이라는 원초적 가치마저 상실할 위기에 몰렸던 대한민국 70년 광복절이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는 절묘한 카드로 일단 관심을 모으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곳곳에 태극기를 내걸고 거리마다 태극기 깃발을 펄럭이게 하는 흥행몰이에도 70년을 맞이하는 광복절은 메르스 혹은 폭염의 위세에 밀려 뒷전에서 헐떡거리는 신세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쉴 수 있다는 것은 태초 이래 인간이 생계를 위한 노동의 굴레를 뒤집어 쓴 이후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게 하는 일이다. 게다가 이번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쉬는 날이 사흘간이나 저절로 이어지고,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 통행료마저 ‘공짜’가 되는 바람에 ‘양잿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가정이 늘어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짜와 무노동이라는 사탕발림으로 광복 70년의 진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광복(光)! 말 그대로 빛을 다시 보게 된 날을 기리는 노래 또한 ‘흙 다시 만져보자’로 시작되는데, 이쯤에서 우리는 지난 70년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되돌아보면서 참된 가치와 진정성 있는 세상을 꿈꾸는 ‘다시’의 차분함에 차라리 몰두하는 일이 필요하다.

작금의 대한민국에는 광복의 벅찬 기쁨을 감동으로 이어갈 수 있는 가슴과 감각을 지닌 세대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 제국주의에서 조국을 되찾게 된 의미와, 공산주의의 침략에 용감하게 맞서 나라를 지켜낸 애국자들에 대한 감탄의 두께도 갈수록 얇아지고 있는 지경이다.

나라를 차라리 지옥으로 여기는 <헬조선>이라는 표현마저도 서슴지 않는 젊은 층의 인터넷 문화는 어쩌면 막연히 기대해 왔던 ‘국민이 함께’, ‘애국심으로 똘똘뭉쳐’,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무색하게 한다.

해마다 8월이면 고전영화나 오래된 연속극을 재탕하듯 되풀이 되는 <친일 의혹> 내지는 <친일 잔존세력>에 대한 얘기도 오히려 면역력만 떨어트리는 돌팔이 처방전과 다를 게 무어 있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친일 세력이 사회를 주도하고 지배하는 현실을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은연중에 없는 자들은 그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굴복과 당연함, 그리고 부러움을 갖게 하는 가진 자들의 기막힌 술책임을 고백하는 일이 나을 수도 있겠다.

남과 북의 고단한 분단은 다시 부모 자식 세대간의 처절한 단절과 경쟁으로 이어지고, 거기에 자본과 노동,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공과 민간의 심각한 차별과 대립에 따른 다양한 분단의 철책을 걷어 낼 슬기가 다시 필요하다.

(일부 국민을) 하루 더 놀려서 침체된 내수를 회복시킨다? 참 그럴 듯도 하겠다. 최악의 청년 실업은 부모세대에 대한 압박으로 풀고, 교육문제는 학교내 성폭력 엄단으로 도치시키는 시대의 분열에 돈이 있고, 기분이 나야 신나게 놀 수 있는 거 아닌가.

노는 데도 품격이 있고 계획이 있다. 분위기를 띄우기 전에 냅다 소리만 질러대는 노래방 손님은 결국 성대 결절이라는 병을 얻은 채 눈총만 잔뜩 받고 쫓겨나게 마련이다.

극단은 극단과 통한다고 했나? 다양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일베>에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존엄하다(人乃天)’는 평등사상의 무기 ‘죽창’이 등장하는 세상. 좌우를 막론하고 울분의 감정을 억누를 길을 찾지 못하는 대한민국 광복 70년. 다시 빛나는 내일의 세상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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