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성숙
성장과 성숙
  • 이수안 <수필가>
  • 승인 2015.08.0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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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수안 <수필가>

어린 복숭아나무에서 첫 수확을 한다.

이웃 과수원에서 수확한 복숭아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자그맣다. 하지만 겨우 두 살짜리 아기 나무가 생애 처음 이루어 낸 결과물이 아닌가. 어른 나무에서 열린 복숭아만큼 탐스럽지는 않아도 대견하기 짝이 없다. 비록 작지만 이 복숭아를 키워 온 어린나무의 수고를 짐작하기 때문이다.

더위가 맹렬해지는 7월의 어른나무는 대체로 새 가지의 성장이 주춤한다. 가지가지 휘도록 열린 열매를 잘 키우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서다. 성장을 위한 더 이상의 욕심을 내려놓은 나무는 성숙이라는 더 큰 가치에 도달한다. 하늘의 도우심과 농부의 염원, 나무의 성숙이 삼위일체가 될 때 나무는 아기 엉덩이를 닮은 탐스러운 복숭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른나무와 달리 아기 나무는 멈추지 않는 성장을 꿈꾼다. 쑥쑥 새 가지를 키워 영역을 확장하는 동시에 몇 알씩이라도 맺은 열매도 키워 내야 하는 어린나무. 크면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아이처럼 서툴 수밖에 없다. 비록 자잘한 복숭아지만 첫 소임을 다한 것이 그저 대견하다.

유난히 빨리 익었는지 말랑한 복숭아가 손에 잡힌다. 땅바닥에 털썩 앉아 껍질을 벗겨 한입 베어 문다. 주르르 단물이 흐르면서 복숭아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아직은 성장을 꿈꾸는 내 복숭아나무도 한 살 더 먹는 내년쯤이면 성숙이라는 귀한 경험을 어렴풋이 하게 될 것이다. 성숙을 통해서 달고 향기로우면서도 두 손에 꽉 차는 실한 열매를 생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거침없는 영역 확장으로 빨리 큰 나무로 자라는 것도 좋지만 성숙 없는 성장에는 때로 위험도 따른다.

작년에 나는 복숭아나무를 심어놓고 칠팔월을 전전긍긍하면서 보냈다. 가을이 가까워져 오는데 성숙해야 할 나무가 계속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웃자라다 겨울에 얼어 죽지 않을까 애를 태웠다. 다행히 겨울이 따스해 별일은 없었지만, 추위가 혹독했다면 겨울을 무사히 넘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크게 잘 자라도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복숭아나무의 성장과 성숙을 보면서 나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에 분쟁을 벌이고 있는 롯데그룹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일본말을 하는 재벌 일가의 정체성까지 더해 너무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땅이 하는 일에는 밝으나 세상일에는 어두운 농사꾼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하지만 끝까지 들어가 보면 이 싸움은 결국 끝없는 성장과 소유를 꿈꾸는 미성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때를 맞춰 노동개혁이라는 단어가 시끌하게 화두 되고 있다. 노동을 개혁해야 경제도 살고 청년 일자리도 생긴다니 반길 일이다. 다른 한 편에서는 재벌을 개혁해야 경제도 살고 청년 일자리도 생긴다며 목청 높인다. 역시나 세상일에 어두운 농사꾼은 그 말도 지당하다 싶다. 양쪽 다 맞다 싶으면서도 노동보다는 재벌을 먼저 개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은 약자의 입장에서 비롯된 이심전심 탓만은 아니다. 너무나도 성장만을 쫓는 우리 사회가 이제는 좀 성숙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정점에 이른 폭염도 이제 한풀 꺾인다고 한다. 정점에 선 성장에 대한 욕심은 언제쯤 꺾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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