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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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덕희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 승인 2015.08.0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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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 김덕희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녀석이 오늘은 왜 이리 늦지.” 여느 때 같았으면 벌써 왔을 아이가 감감 무소식이다. 핸드폰마저 꺼져 있다고 한다. 베란다에 나가 녀석이 오는 골목길을 내려다보았다. 얼마 후 홍당무처럼 벌건 얼굴을 하고 뛰어 들어 온 녀석은 “할머니, 학교공부 끝나고 6학년 때 친구들과 축구하고 오느라고 늦었어.” 열네 살, 지원이는 올 2월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 손자 녀석이다. 이제 제법 키도 크고 길쭉한 팔다리하며 한창 클 고비에 들어 변성기까지 온 듯, 쉰 목소리로 “할머니, 성우도 만났는데 글쎄 걔는 학교 가기가 지겹대요. 나도 할머니 말대로 성우네 학교에 입학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왜, 누가 괴롭히기라도 한다든” “아니, 그 백로 때문이래요.” 지원이와 성우는 유치원 때부터 아주 친하게 지내는 친구 사이로 성우는 매사에 적극적이며 부지런했다. 그래서 같은 학교에 입학하여 사이좋게 잘 지내기를 바랐지만 지원이는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가고 성우는 거리가 좀 떨어진 학교로 갔다.

그런데 요즘 성우가 다니는 학교 아이들과 그 주변사람들은 때 아닌 백로와의 전쟁 중이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참다못한 이 학교 학부모회는 학교뒤편 소나무 숲, 백로 서식지에서 유발하는 극심한 악취와 소음으로 정상적인 수업활동이 불가능하다며 이웃주민들과 연대하여 청원서를 청주시와 환경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물론 자연환경과 생태환경의 중요성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보다 더 안전하고 쾌적한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또한 해당학교의 학습관련 뿐만 아니라 백로 1000여 마리의 배설물, 털 날림, 사체, 잔여먹이 등에서 파리와 해충으로 건강을 해칠 우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백로가 이곳 잠두봉(학교 뒷산)에 서식하게 된 것은 아마도 어제오늘 일은 아닌 듯싶다. 우리 지역의 백로 서식지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까치내 인근 송절동이었다고 한다. 송절동은 인가도 많지 않고 특히 소나무가 많아 백로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는데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갈 곳을 잃은 백로들이 성우가 다니는 이 학교 뒷산으로 이동해 왔다고 한다. 그렇게 삶의 터전을 잃고 찾아든 백로가 무슨 죄이랴 싶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결단인 것이다. 

어제 남중학교 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가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여름방학 개학일(18일) 전까지 백로 서식지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일단 급식을 거부한 후 등교까지 거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보면 청주시가 학부모 대표, 환경단체 대표자, 시청·청주교대·청주교육지원청 공무원, 지방의원 등 16명으로 구성한 ‘백로떼 집단서식지 피해예방대책위원회’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해 보면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마음은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서 제외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아름다운 우윳빛 깃털을 가진 우아한 백로를 선비에 비하는가 하면 느릿느릿 날갯짓하며 논이나 냇가에서 한유하게 먹이 사냥을 하는 모습을 보고 여백의 미를 찾았다고 한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하고 백로를 옳은 사람, 정의의 편에 세우기도 했듯이 지원이와 성우도 옛 선조들처럼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무분별한 개발이 계속되는 한 백로와의 전쟁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저녁 무렵에 잠두봉 공원에 나갔다. 한 낮의 소음은 사라지고 평화와 고요가 깃들어 적막하기만 하다. 왠지 모르게 애잔함이 묻어났다. 진정 공생의 길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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