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여름휴가
가자, 여름휴가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8.05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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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여름은 여름다울 때 아름답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한줄기 소낙비가 교차하고, 산과 강과 바다가 지친 인간들을 불러 모아야 진정 여름이다.

하지만 금년 여름은 너무 덥고 너무 길다.

낮에는 사우나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찜통이 되고, 밤에도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니 삶이 피곤하다.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열사병으로 목숨까지 잃는 사람이 있으니 가히 살인더위다.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에어컨을 틀어야 되니 없는 사람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반도는 1년 12달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3달씩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 갖는 아름다운 땅이었다.

그런 사계의 땅이 지구의 기상이변과 생태계변화로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있다. 봄과 가을은 여름과 겨울을 부르는 마중물 역할만 하고 금세 사라지는 간절기가 되고 말았으니, 이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대비가 필요한 때이다.

아무튼 말복이 6일이나 남아 있어 살인더위는 현재 진행형이다.

목하 여름휴가 절정기다.

명절 때처럼 고속도로 정체가 심하다니 휴가인파를 짐작할 만하다.

덕분에 메르스 때문에 빈사상태에 빠져있던 관광업계가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여름휴가를 국내에서 보내자고 호소할 정도였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해외로 안 나가고 국내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소비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 또한 애국적 처신이다.

그러므로 아직 여름휴가를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만사 제쳐놓고 떠나라.

파도가 넘실거리는 동해로 서해로 남해로 가서 해수욕도 하고 싱싱한 수산물을 안주삼아 소주도 한 잔 하면 좋으리.

조용한 산사에서 시원한 계곡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오라.

힐링도 좋고, 충전도 좋다.

아니 방전이면 어떻고, 일탈이면 어떠랴.

여름은 벗는 계절이다.

옷만 벗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벗는 것이다. 무거운 책임도 잠시 벗고, 이글거리는 욕망도 욕심조차도 훌훌 벗어버리는 것이 바로 여름휴가다. 아이들이 훌렁 벗고 개울물에 첨벙 뛰어들 듯 그렇게 뛰어드는 것이다.

그게 진짜 휴가다.

이틀 전 아들 내외와 손녀랑 함께 무주리조트로 휴가 왔다.

작년에는 서해안 바닷가에서 보냈는데, 올해는 산을 택했다. 너무 더워서 시원한 산바람과 나무그늘이 있는 곳이 좋을 듯싶어서다.

이제 두 돌 된 손녀 아직 할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는 말이 느린 손녀지만 함께 노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내리사랑이라더니 사흘이 너무나 짧다.

혹자는 여름휴가를 집에서 보내며 하루 종일 TV보고 뒹굴면서, 음식은 시켜먹고, 낮잠 자고 싶을 때 낮잠도 자고, 냉장시켜 놓은 시원한 수박 먹으며 지내는 것이 최상의 휴가라고 말한다.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휴가는 여행을 동반해야 제격이다.

어디론가 떠나는 삶터에서 잠시라도 비켜있는, 익숙함에서 조금은 낯선, 자연친화적인, 거기에 아름다운 추억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물론 적잖은 비용이 든다.

한국 사람은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프랑스 사람들은 휴가 가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한다. 어느 쪽이 좋은 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휴가 가서 과소비하라는 말은 아니다.

휴가를 휴가답게 즐기라는 거다.

휴가는 결코 무의미한 소비가 아니라 자신과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힐링과 충전을 지향하는 휴가야말로 자신을 위한 진정한 재투자이며, 여름휴가와 휴식이 그대의 보약이다.

어서 여름휴가를 즐겨라. 저기 여름의 끝이 보인다.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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