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생가서 광복 의미 되새긴다
독립운동가 생가서 광복 의미 되새긴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5.08.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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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귀래리 `신채호 사당'

금암리 초가집 `손병희 유허지'

삼일공원 `신홍식 선생 동상'

진천 산척리 `이상설 생가' 등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8·15 평화와 번영의 예술제, 태극기 사랑 70일 운동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한다. 자녀들에게 광복의 의미와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은 학부모라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생가로 발길을 돌리면 어떨까?

 

# 단재 신채호 사당 (충북 기념물 제90호·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리)

 

 

 

 

 

 

 

 

 

사당은 귀래리 마을 뒷편 산자락 끝에 있으며 바로 뒤에 묘소가 있다. 사당은 본래 1960년 종중에서 처음 건립했고 1978년 지금 위치로 옮겨왔다.

신채호(1880~1936) 선생은 1880년 12월 8일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에서 출생하고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성장했다. 이동녕,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후 의정원 전원위원장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기울이기도 한 선생은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여순감옥에서 복역중 1936년 2월 21일 56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 손병희 선생 유허지(충북 기념물 제30호·청주시 북이면 금암리)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의암 손병희(1861~1922) 선생은 북이면 금암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일찍이 동학에 입문해 1894년 동학혁명 때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10만의 도중(徒衆)을 이끌고 관군과 싸웠다.

1919년 기독교·불교 대표들과 함께 3·1운동을 영도해 독립을 선언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복역중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상춘원에서 요양중 병사했다. 선생이 태어난 생가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초가집으로 원형을 보존하고 1961년 탄신 100주년을 맞아 유허비를 건립했다.
 

 

# 이상설 생가(충북기념물 제77호·진천군 진천읍 이상설안길 10)

 

 

 

 

 

 

 

 

 

 

이상설 생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다. 이상설(1871∼1917)은 본관은 경주, 본명은 순오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통분을 금치 못해 가두에서 연설한 후 두문불출하다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이 독립국임을 주장코자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이준·이위종과 헤이그에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건물은 잡석기단 위에 흙벽돌로 벽을 쌓고 진흙으로 마감한 초가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다.



# 신홍식 선생(1872~1937)

한국의 감리교 목사이며 독립운동가이다. 청주에서 출생해 어릴때는 한학을 익혔으나, 1904년 청주의 북감리교계 교회를 통해 개신교에 입문했다.

1919년 3·1 운동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참가했다. 3·1 운동에는 이승훈의 권유를 받고 북감리교의 대표로 참가했는데, 평양 지역의 만세 운동도 조직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이 사건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았고, 청주 삼일공원에 동상이 설치돼 있다.

/김금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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