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손님
여름 손님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8.0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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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이야기

무더운 여름 날 손님이 찾아오는 것만큼 무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가족들 간에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는 것조차도 짜증이 나기 쉬운데, 여기에 편치 않은 손님까지 더해지면 여간 고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보면 반갑기 그지없는 여름 손님도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날씨가 덥더라도 살림살이가 아무리 곤궁해도 반가운 손님은 과연 어떤 손님일까?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에게도 반가운 여름 손님이 찾아온 일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이공이 나를 찾아와 주다(夏日李公見訪-杜甫)



遠林暑氣薄(원림서기박) : 멀리 들어온 숲은 더운 기운이 적은데

公子過我遊(공자과아유) : 귀한 분이 내가 있는 곳을 지나다 오셨네

貧居類村塢(빈거류촌오) : 가난한 거처는 마을 담이나 다름 없고

僻近城南樓(벽근성남누) : 한쪽 귀퉁이에 있어 성의 남쪽 누대에 가까웠네

傍舍頗淳朴(방사파순박) : 이웃 사람들은 모두 순박하여

所願亦易求(소원역이구) : 아쉬운 것도 쉽게 구한다네

隔屋問西家(격옥문서가) : 담 너머 서쪽 집에 묻기를

借問有酒不(차문유주불) : 술 좀 가진 것 없는가 하니

牆頭過濁醪(장두과탁료) : 담장 너머로 막걸리를 건네준다

淸風左右至(청풍좌우지) : 맑은 바람 좌우에서 불어오니

客意已驚秋(객의이경추) : 손님은 마음속으로 이미 가을인가 놀란다

巢多衆鳥鬪(소다중조투) : 새둥지 많아 뭇 새들은 다투고

葉密鳴蟬稠(엽밀명선조) : 나뭇잎 무성하여 매미소리 요란하다

苦遭此物聒고조차물괄) : 시끄러운 매미소리 듣기가 괴로운데

孰謂吾廬幽(숙위오려유) : 누가 내 집이 그윽하다 하는가

水花晩色靜(수화만색정) : 연꽃은 저녁 빛에 고요하니

庶足充淹留(서족충엄류) : 손님 잡아두기에 충분하네

預恐樽中盡(예공준중진) : 술통의 술 떨어질까 미리 두려워

更起爲君謀(갱기위군모) : 다시 일어나 술 마련해 두려네



시인의 집은 가난하고 궁벽하여 누추하지만, 그래도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숲에 있는지라 더운 기운이 덜해서 여름을 지내기는 좋은 편이다.

그래서 도회지 윤택한 곳에 사는 귀한 손님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이 사는 곳은 시원한 것 말고도, 귀한 손님을 맞기에 좋은 점이 여럿 있었다. 마을 이웃들이 순박하고 인정이 많아서 무엇이든 기꺼이 있는 것을 내어준다. 시인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술과 음식을 담장 너머로 전해 주는 모습은 정겹기 그지없다. 때 이른 가을 맛을 선사하는 시원한 바람 또한 손님의 환심을 사기에 족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소리 매미 소리는 여기가 외진 곳임을 잊게 하는 효과 음향이다.

여기에 저녁 연꽃까지 더해지면, 손님은 하루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되고, 시인은 다시 일어나 남은 손님 대접을 궁리한다. 참으로 따뜻한 여름나기가 아닐 수 없다.

여름 손님이 무조건 무서운 것은 아니다. 시원한 바람, 풍성한 자연, 따뜻한 인심으로 여름 손님을 하루 더 머물게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 말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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