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선생님
언니선생님
  • 김영희 <청주상당도서관 팀장>
  • 승인 2015.08.02 2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서관 담론

“선생님! 양초를 이렇게 발라요?” “예! 잘하네요. 그 다음에 목공풀하고 물감을 섞어서 바르는 거예요” 손에 물감과 목공풀을 찐득하게 묻혀가며 아이들이 비밀편지를 만들고 있다. 선생님은 앳된 얼굴의 여고생이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그림에서 상여꾼을 찾아보세요. 심청이와 귀덕이네는 어디 있지요?” 책을 읽어가며 이야기가 한창이다. 이 교실에서도 여고생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상당도서관에서는 특별한 방학교실이 열렸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방학숙제를 하러 도서관에 모였다. 선생님은 여고생들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여고생들이 초등학생의 방학숙제를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다. 자원봉사하는 여고생이나 언니선생님이랑 수업하는 아이들 모두 상기된 표정들이다.

자원봉사라고 하면 테레사수녀님이나 이태석신부, 월드비젼, 유니세프 등이 우선 떠오른다. 뭔가 돈 좀 있어야 할 것 같고 이름 좀 날려야 할 것 같다. 더구나 학생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청소나 도우미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 발칙한 여고생들이 생각을 달리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나섰다. 도서관에 오는 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상당도서관은 그들의 멍석을 필 마당이 되어주었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여고생들이 예닐곱살 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지 반년이 지났다. 어느 날은 여럿을 앉혀 놓고 책도 읽어주고 게임도 하며 보낸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찾아오는 아이가 한 명도 없어 기다리기만 하다 돌아간 날도 있었다.

봉사를 처음 시작할 때 학생들은 동화구연과 교구놀이 교육을 받았다. 설렘과 쑥스러움, 자신이 있다가도 없어지는 복잡한 마음으로 시작한 학생들이 이젠 노하우까지 생겼다. 아이들 표정을 읽게 되었고 다른 책이나 놀이로 바꿀 시점도 알게 되었다. 고정 팬도 생겨 그 아이를 보고 싶어 하기도 한다.

또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을 다시 읽어주면서 그림과 색채에 빠져들고 새롭게 의미도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린 아이들이 이걸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걱정도 한다.

그 봉사활동이 발전하여 이번 여름방학에는 방학숙제를 도와주기로 했다. 과학실험교실과 심청전 읽고 독후 활동을 하기로 하고 초등학교 3-6학년을 대상으로 정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입시를 위한 봉사활동 시간은 이미 채웠지만 봉사활동은 진행 중이고 내년에도 계속 될 것이다. 학생들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슴에 경험의 보물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 동생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잘 따라줘서 고맙다고 진짜 선생님이 된 것 같다고 한다. 배우기만 하다 가르쳐보니 선생님의 입장도 조금 알 것도 같다고 한다.

봉사활동을 해 본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받는 즐거움보다 주는 즐거움이 크다고, 봉사는 꼭 돈이 많거나 시간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의 여고생들도 그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이 활동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진로를 생각하는데 작은 역할이라도 되었으면 좋겠고 우리 상당도서관은 참 봉사활동의 발판이 됐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