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오픈카
며느리 오픈카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5.07.3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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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거리에 살고 있으므로 더 했다. 걱정도 팔자라는 남편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살림을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궁금했다. 주책없이 보고 싶은 걸 어쩌랴. 며느리를 얻고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아들 집에 간다.

남편의 핀잔을 귀 밖으로 들으며 아들이 좋아하는 잡채, 깻잎 장아찌, 멸치볶음, 며느리가 먹고 싶다는 오징어채볶음, 김치 등등 반찬을 만들어 보따리를 쌌다.

아들과 며느리가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아이들과 진한 포옹을 했다. 아들은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잘 살아 있었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단출한 살림을 야무지게 하고 있었다. 애들은 먼 길 왔으니 며칠 쉬었다 가란다. 하룻밤을 잤다. 내 집이 아니니 모든 것이 불편했다. 이제 애들 얼굴 보았으니 얼른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느리가 “어머니 내일은 제 오픈카 타고 시장 보러 가요” 한다. 난 “오픈카? 너 오픈카 있니?”하니까 있단다. 속으로만 얘들이 무슨 오픈카를 타고 다니지. 나에게 오픈카 이미지는 영화에서나 보는 긴 머리를 하고 머플러를 날리며 푸른 초원을 달리는 서양의 낭만으로 생각된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며느리와 집을 나섰다. 어떻게 생긴 오픈카를 타고 다니는지 기대를 잔뜩했다. 그런데 주차장이 아닌 거리로 나간다. 그러더니 태국의 파타야 거리에 수없이 다니는 썽테우가 제 오픈카란다. 우리 돈으로 350원만 주면 가까운 거리는 얼마든지 타고 다닌단다. 트럭 뒷자리에 의자를 붙여 사용하는 대중교통이다. 손들면 아무데서나 태워주고 내리고 싶은 곳에서 벨만 누르면 세워준다. 며느리 말에 의하면 돈을 조금 더 주면 집 앞에까지 태워준단다. 무더운 나라에서 고생스러울 텐데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며느리가 그지없이 고맙고 기특하다. 살림솜씨나 생각하는 사고가 혹시나 했던 내 걱정을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었다.

며느릴 처음 봤을 때 체구가 작고 살이 없어 야무져보였다. 만만해 보이지 않는 것이 맘에 들면서도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결혼하고 바로 떨어져 살았으니 정들을 새도 없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내 식구라는 애틋한 감정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주일을 함께 지내면서 가까워졌다. 코사멧이라는 섬으로 여행을 하면서 불편할 텐데 굳이 한방을 쓰자는 며느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행을 하면서 한방에서 자고 밥을 먹으며 우리에게 얼마나 살갑게 하던지 정이 담뿍 들었다. 내 새끼구나. 남편은 주책없이 매일 입을 헤 벌리고 있다. 며칠만에 며느리 바보가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며느리자리에서 식구들을 챙겨주는 역할에 익숙해 있다. 그런데 며느리가 나를 챙긴다. 어색하고 불편하면서도 행복하다. 이것이 사람 사는 이치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 인생을 시작하는 애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지만 안타까울 뿐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잘 하다가 느닷없이 태국으로 간다 했을 때도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자식들은 제 부모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며 성장하고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간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 자신의 능력만큼 살아간다.

지금은 햇볕만 겨우 가리는 썽테우를 타고 태국의 거리를 활보하지만 훗날 이 여름, 무모해서 아름다웠던 젊음을 추억할 며느리를 생각한다. 공항에서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어 주던 며느리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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