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관아공원, 지금부터 준비해야
청주 관아공원, 지금부터 준비해야
  • 박상일 <역사학박사, 청주문화원 부원장>
  • 승인 2015.07.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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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박상일 <역사학박사, 청주문화원 부원장>

지난주에 청주시는 상당구청사 건립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이에 따르면 상당구청은 상당구 남일면 효촌리 92-2번지 공공청사용지 2만7033㎡내에 업무시설과 주민편의시설을 포함, 연면적 1만9406㎡(지하 1층, 지상 3∼5층)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다. 사업비는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통해 506억원으로 책정됐다. 시는 5월 29일 충북도 지방재정투자심사위원회로부터 건립사업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았고, 시의회 공유재산관리계획승인을 거쳐 집행계획서를 도에 제출했다. 하반기에는 공모를 거쳐 설계업체를 선정하고 내년 하반기에 기본실시설계를 마치고 2018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란다.

3년 후 상당구청이 이전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필자가 이토록 상당구청 이전을 반기는 데는 상당구 주민들에게 행정편의 제공이라는 원론적인 것보다 솔직히 다른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청주시민의 숙원이었던 관아공원 조성이 이제는 확고히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현 상당구청은 주지하듯이 통합청주시 출범 이전까지 청원군청으로 사용되었고, 역사를 거스르면 조선시대 청주목 관아였던 곳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청주동헌이었던 청녕각(淸寧閣)이 남아있다.

관아는 지방수령 및 관원들이 행정사무를 보는 건물로서 관서(官署) 또는 공해( )라고도 하였는데 요즘의 관청이다. 청주는 백제 상당현과 신라 서원경, 고려시대 이후 청주목이 있던 곳으로서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도회지였기에 많은 관아건물이 지어졌을 것이나 지금은 극히 일부만 남아있을 뿐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고지도에 의하면 청주동헌은 외삼문과 내삼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었으며, 내삼문 앞에는 집사청과 그 뒤로 ㄴ자형의 부속건물이 배치되고, 동헌 동쪽에는 접견실 격인 작은 연당이 있었다. 내아는 역시 남향한 본채와 3, 4채의 부속 건물로 이루어졌고 동헌 북서쪽에 별도로 마련된 객사의 명칭은 서원관(西原館)이었는데 외삼문과 내삼문을 갖추어 아무나 드나들 수 없게 하고 동헌에서는 협문으로 통하였다. 객사의 동쪽에는 망선루가 있었다.

이러한 청주관아의 모습은 각종 문헌기록과 고지도를 통해 생생하게 알 수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고 헐려버렸다.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훼손하고 그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어 왕궁의 기를 눌렀듯이 청주에서는 고도의 상징이며 고색창연하였던 관아건물들이 하나둘씩 헐리거나 다른 데로 옮겨 사가로 사용되었다. 청주군청으로 사용되던 관아는 해방을 맞이한 후에도 청원군청으로 계속되면서 관아의 원형이 철저하게 망실되었다. 게다가 동헌 앞에 바짝 붙여 3층 청사를 건축함으로써 오늘날의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일제를 탓하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3년 후에 상당구청을 이전하면 그 자리는 관아공원이 되어야 한다. 관아공원 조성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이미 학계와 문화계에서는 그렇게 추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혹여 청주시 청사의 공간부족을 이유로 다른 용도로 이용한다거나 공원조성을 미루지 않을까 하는 괜한 조바심에서 하는 말이다. 청주의 원도심은 읍성과 관아 충청병영 청주진영 남석교가 있었던 특별한 곳이다. 청주역사의 중심이며 문화적 정신적 구심점이다. 만시지탄이나 이제라도 이곳의 정체성을 찾아나가야 한다. 동헌 앞 건물부터 철거하고 내아와 외아 내삼문 외삼문을 재건하여 어떻게 역사문화의 공간으로 꾸밀 것인지 준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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