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이사
집과 이사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7.2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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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현대인들은 이사에 익숙한 삶을 산다.
그러나 농경시대 사람들은 경작할 땅을 기반으로 살았으므로 거주지를 마음대로 옮길 수 없었다. 그러므로 민초들은 대부분 한 집에서 생로병사를 맞았다.

아들이 성혼해 분가를 해도 인근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고, 시집 간 딸은 타지에서 출가외인으로 살아야 했다. 하여 저마다 생가(生家)가 있었지만, 현대인들에겐 생가가 딱히 없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나고 산후조리원에 가서 한동안 지내다가 집으로 오거니와,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시작해 내 집을 장만할 때까지 여러 번 집을 옮기고, 부모 잘 만나 자가로 시작한 유복한 부부들도 한두 번쯤은 이사를 한다.

뿐만 아니라 댐 수몰민처럼 도시계획에 편입되고 재개발 되면 살았던 집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여간해서 생가를 유지할 수 없다.

나라마다 인류를 빛낸 위대한 인물들을 선양하고 관광자원화 하기 위해 위인들의 생가를 보존, 복원하고 있다. 그로 인해 백 년 전에 죽은 위인 한 명이 그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리기도 한다. 이럴 진대 앞으로 나올 대한민국 위인들의 생가는 어찌 복원하고 활용할지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한다.

아무튼 현대인들은 이사를 한다.
직장 이동으로, 전세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사하는 생계형 이사가 있는가 하면, 재산증식형 이사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이사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집이 재산증식의 도구가 되면서 잠시 살고 파는 이른바 치고 빠지는 이사를 한다.

그렇게 집을 매개로 한 몫 잡은 복부인들이 이 땅에 즐비하다. 덕분에 이사대행 전문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목하 성업 중이다. 


한국 사람들은 집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다. 집을 갖기 위해 문화생활은 물론 먹을 것, 입을 것도 줄이고 아낀다. 하물며 집 없는 서러움을 겪은 이들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 집 가진 사람들도 지금보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집,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개성 있는 집으로 갈아타기를 꿈꾼다.

아무튼 사람들은 보다 나은 집을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이사를 시도한다. 그것도 금융기관에서 빚을 얻어 무리하게 집을 장만하고 키운다. 선량한 국민들을 빚쟁이로 만드는 게 바로 집이다.

남진이 불러 한때 유행했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어’ 처럼 그림 같은 집은 모든 이의 로망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저마다 마음속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산다. 그러나 집이 크고 좋다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의, 식, 주는 행복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산다고 해도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병약하거나, 사랑이 없거나, 외로우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젊을 때는 집을 장만하고, 채울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마치 그게 삶의 목적이요 보람인 것처럼 맹렬하게 산다. 

그러나 나이 들면 비움과 버림의 미학을 알게 된다. 집도 줄이고, 짐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욕심도 비우고, 허명도 비우고, 자존심조차도 비워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음을 터득한다.

그렇다. 먹은 만큼 배설해야 순환되는 원리가 예 있음이다. 젊을 때는 열심히 일해서 일한만큼 채우고, 늙으면 채운만큼 비워내는 보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집이 크든 작든, 내 집이든 전·월세 집이든 영원히 채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건강과 사랑과 배려이다. 스위트 홈이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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