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효(孝)
우리 시대의 효(孝)
  • 진용우 <충주대원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15.07.2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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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진용우 <충주대원고등학교 교사>

우리 학교 학생식당에서 최근 충주시 안림동의 어르신들을 초청하여 삼계탕도 먹고 공연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매년 하는 행사이지만 어르신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은 할머니가 안계시고 혼자 사시는데 자식들도 모두 성장해 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혼자서 사시는 독거노인 이었다. 옛날 가옥(기와집)에서 주변의 텃밭을 일구며 고추, 배추, 시금치 농사를 지으신다고 하셨다. 직접 자신이 농사를 하신다며 구부러진 허리를 잡으시고는 까맣게 탄 얼굴에는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셨다. 문득 바라본 할아버지의 손등에서 유재영 시인의 ‘둑방길’이 떠올랐다.

‘어머니 마른 손 같은 조팝꽃이 한창이다.’

멀리 둑방길의 풍경을 조망하며 결국은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끝을 맺고 있는 시이다. 할아버지의 손은 조팝꽃처럼 메말라 있었다. 그 손은 고난의 역사를 지닌 듯 했다. 난 문득 뉴스에서 가끔 보는 독거노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혼자 사는 노인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일주일 이상 주변 사람들이 아무도 몰랐다는 내용들의 뉴스보도를 생각하며 우리 시대의 효란 무엇인가 하는 새삼스럽지만 중요한 의문을 스스로 해 보았다

서양에서는 동양의 효(孝) 사상에서 정신적인 교육을 보완하기 위한 본보기로 삼아 학생들에게 윤리교육을 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 고유의 효(孝) 사상이야말로 가족공동체의 유대감과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에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고려 말 풍습 중 ‘고려장(高麗葬)’이라는 것이 있었다. 늙은 부모를 산속의 구덩이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례를 지냈다는 풍습으로 오늘날에도 늙고 쇠약한 부모를 낯선 곳에 유기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조선 세종 때 이르러서야 왕이 고려장의 풍습을 고치기 위해 교지를 내렸다.

세종은 강조한 것이다.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돌아가신 후에도 슬퍼하는 마음을 오래도록 지녀야 하거늘, 일부 백성들은 나쁜 관습에 젖어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어리석고 반인륜적 행위임을 모르고 있음을 말이다. 이에 고려장과 같은 구습(舊習)을 타파하도록 왕명으로 금지하고자 한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흘러 효(孝) 정신이 퇴색되고 변질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본연의 윤리적 자세는 시공을 초월하여 지켜져야 한다. 옛날 같이 부모를 평생 동안 옆에서 봉양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최소한 부모의 고마움을 항상 가슴 속에 새기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내가 할 도리를 지키고 사는 것이 우리 시대의 효(孝)가 아닐까.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가족이 많아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며 늘 안부를 묻고 찾아뵙는 자세만으로도 우리 시대의 효가 아닐까.

이번 경로행사가 하루 일정이지만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취지로, 형식적 행사가 아닌 학생들의 마음에 효(孝)사상을 고취하고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도덕적 인간형에 다가가는 계기교육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았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세상에 계신 나의 조부모와 부모를 생각하였다. 어리광부리며 철없던 나를 사랑과 관심으로 키워주신 내 가족을 생각하며 ‘나’라는 존재의 가치와 부모의 ‘내리사랑’에 대한 감사와 그 고귀함을 가슴 속 깊이 새기었다. 지금의 ‘나’는 그냥 내가 아님을, 부모의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왜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뒤늦게 깨닫고 있을까. 효(孝)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회한을 지니며 오늘도 우리 아이들을 어설프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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