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겨보기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겨보기
  •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 승인 2015.07.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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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중학교 독서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읽을 만한 고전을 찾고 있던 중 재미와 작품성을 모두 갖춘 ‘허클베리핀의 모험’(마크트웨인 저)을 주제 도서로 선정했다.

‘톰소여의 모험’과 함께 초등학생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모험 소설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다시 살펴보게 된 것은 이 작품에 대한 헤밍웨이의 평가 때문이었다.

헤밍웨이는 ‘미국의 모든 현대 문학은 허클베리핀의 모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평했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기에 대문호 헤밍웨이가 이런 평가를 한 것일까?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아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도 또 당시 어른들의 눈에도 아주 부담스럽기만 한 아이 허크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무작정 도망을 친다.

허크를 돌볼 수 있는 안전한 청교도 가정으로 피신할 수도 있었지만 허크에게는 규율에 얽매인 청교도 가정의 감시와 보호가 아버지의 폭력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자신을 팔아 넘기려 하는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흑인 노예 짐과의 조우가 있고, 둘은 뗏목에 몸을 싣고 자유 주를 찾아 미시시피 강을 따라 긴 여정을 시작한다.

여정 속에서 허크와 짐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에 맞닥뜨린다. 왜 숙원 관계가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서로 총질을 하다가 주일이 되면 같은 교회에 가서 무릎에 총을 끼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야바위꾼들에 속아 종교 집회에 참가하고 자신의 주머니를 서슴없이 푸는 사람들. 여정 속에서 허크가 만난 문명인들의 모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금욕으로 무장한 당시 미국인들의 모습이 사실은 위선과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허크의 눈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이 1884년에 출간한 작품이다.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이 있은 후 사람들이 혼란을 겪던 시기이다.

작품 속 허크 역시 노예인 짐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인종 간 평등의 문제가 당시에는 전쟁을 일으킬 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다.

지난 6월26일 미연방대법원에서 아주 역사적인 재판이 있었다.

미연방대법원은 주(州) 정부가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것이 헌법 수정조항 제14조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그동안 미국의 일부 주에서만 허용되던 동성혼이 이제 미 전역에서 합법화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1860년대에 일어났던 일이 2015년에 똑같이 일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사람들이 노예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다가 노예 해방 선언이 있은 후 혼란을 겪은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제 중에 당연하지 않은 것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미연방대법원의 동성혼 합헌 판결 후 우리가 느끼는 혼란과 허크의 갈등을 연결시켜 독서 동아리 토론 주제로 삼아 보았다. 고전을 통해 현재를 되짚어 본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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