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으로 본 대한민국
보훈으로 본 대한민국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7.2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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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며칠 전 국가보훈처로부터 대통령 명의의 국가유공자증서를 받았다.

아버님이 작고한지 33년 만에 국가유공자가 된 것이다.

늦게나마 아버님의 공적이 선양되어 가슴이 뭉클했다.

아버님은 경북 안동에 소재한 시골마을 양반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팔척장신의 심성 좋은 아버님은 입에 풀칠하고 사는 농사일을 팽개치고 6·25때 경찰에 투신했다.

첫 근무지가 지리산 토벌대였다.

험준한 지리산 계곡에서 거세게 항전하던 빨치산을 토벌하는 전투에 배치되어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다.

경찰청 조회결과 부대장표창 수상과 전우애와 희생정신이 남달랐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이를 안 것은 한 달 전 문중 일을 보고 있는 집안 형님으로 부터 ‘어릴 때 아제가 빨치산 경찰토벌대로 참전했고, 상당한 전공을 세운 걸로 들었는데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느냐’고 뜬금없는 전화를 받고서였다.

마침 바로 밑에 동생이 서울에서 경찰관으로 재직하고 있어 경찰청에 사실 확인을 조회하게 했고, 동 사실이 확인되어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한지 보름 만에 국가유공자증서가 나온 것이다.

아버님이 생전에 자신의 무용담을 자식들에게 들려주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동족상잔의 아픔과 비애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로서, 토벌대 대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참전유공자의 자격요건은 6·25전쟁 등의 전투에 참전하고 전역된 군인, 병역법 또는 군인사법에 의한 현역복무 중 1964년 7월 18일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사이에 월남전에 참전하고 전역된 군인, 6·25전쟁에 참전하고 퇴직한 경찰공무원, 6·25전쟁 또는 월남전쟁에 참전한 사실이 있다고 국방부장관이 인정한 분, 경찰서장 등 경찰관서장의 지휘·통제를 받아 6·25전쟁에 참가한 사실이 있다고 경찰청장이 인정한 분이다.

참전유공자로 선양되면 대통령 명의 참전유공자증서가 수여되고, 생존 시 65세 이상부터 월 18만 원의 참전명예수당과 보훈병원 진료 시 본인부담 진료비 60%를 감면받고, 사망하면 국립호국원에 배우자와 함께 안장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부모님이 고인이 된지 오래되어 호국원에 이장할 수 있는 특전 이외에는 누릴게 없지만 늦게나마 국립호국원에 영면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기쁘기 그지없다.

아버님 생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보훈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국가보훈처와 지방의 보훈지청이 있고, 사명감과 섬김의 정신을 갖고 있는 보훈 공무원들이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력과 내공이 그만큼 강하고 성숙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아무리 국가가 잘 하려 해도 그럴 여력이 없으면 할 수 없고, 국민들의 보훈의식이 낮아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권수호와 민족번영은 국민들의 피 끓은 우국충정에서 나온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보훈을 잘하는 나라가 좋은 나라이고, 미래 또한 밝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서 보듯,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이 시사하듯,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애국은 결코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부심과 긍지뿐만 아니라 믿고 기댈 수 있는 단단한 국력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지금보다 더 잘 살고, 더욱 강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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