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거짓말
  • 임정숙 <수필가>
  • 승인 2015.07.2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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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정숙 <수필가>

남자가 질끈 눈을 감는다. 한 여자의 충격적인 실체를 알게 된 순간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는 돈도, 학벌도, 운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거짓말로 일관하였다. 신분상승을 위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여주인공의 끝없는 거짓말이 언제 밝혀질지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 졸였다. 양손에 떡을 쥐듯 재벌 2세와 호텔 최고경영자인 상사, 두 남자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일자리를 얻고 돈을 얻고 명예를 꿈꾸었다.

예전 방영됐던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다. 여주인공 인물의 아픈 성장 과정과 그로 인해 얻게 된 병을 다룬 내용 전개이다. 매회 흥미로움이 눈길을 끌었다. ‘리플리’란 자신이 바라는 세계만을 진짜라고 믿는다. 실제로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을 오히려 허구라고 판단하는 정신병이라고 한다.

친구 학벌을 위조해 온갖 거짓말을 일삼는다. 무기로 빼어난 미모를 내세운다. 결국, 한 남자는 첫눈에 반해 헤어 나오지 못했고, 한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게다가 복병처럼 나타난 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녀가 일본에서 19세에 술집 접대부 일을 시작하며 유흥가를 전전할 때 알던 사이였다. 오랫동안 묵혔던 순정을 보이며 집착했다.

비련의 여주인공임에도 이기적이고 냉정할 때는 무서우리만큼 차가운 무모함을 드러냈다. 치명적인 과거를 빌미로 집착하는 남자에게 쫓기면서도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한다. 명성을 쟁취하려는 욕망은 필사적이었다.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초조해하고 위축된 그녀 눈빛은 늘 불안했다. 어느 순간, 인간적인 연민이 일기도 했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투성이인 그녀에게 모성애가 자극된 모양이다.

각자 사람마다 다르게 처한 삶을 어떻게 단정지어 정의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문제는, 제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단순한 거짓말 하나로 언제까지 쉽게 열리기만 할 건지다. 속는 사람이 바보고 속이는 사람이 웃는 세상인가.

경쟁시대에 개인의 사회적 성취욕은 점점 커지나 꿈을 이룰 통로는 막혀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기에 가공의 세계를 만들어 결국,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환상 속에서 살게 된다는 인격 장애인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누구든 각별했던 사람의 이중성에 한동안 씁쓸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상대 감정에 깨알처럼 훈훈함을 보이던 사람의 변질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안다.

일상에서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어떤 일을 모두 털어놓기보다는 대충 얼버무린다든지, 아예 모르는 게 약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편이 나을 경우가 있다. 모르고 지나도 될 괜한 고통을 겪게 한다든지 불필요한 오해와 쓸데없는 질투심을 부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습관적이고 병적인 거짓말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속이고 해친다면 그건 분명 심각한 죄악일 거다.

여전히 사회는 거짓말을 권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우리는 세상의 정의를 흔들림 없이 믿고 사는 걸까. 정직과 성실만이 성공과 출세를 보장한다고 의심 없이 외칠 수 있는지, 명쾌한 답변이 쉽지 않다.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한 시대이다. 그러나 벼랑 끝에 선 나의 손을 놓지 않는 건 거짓 아닌 자신의 믿음뿐임을 모르진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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