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지에 싸인 생
포장지에 싸인 생
  • 최 준 <시인>
  • 승인 2015.07.2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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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최 준 <시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생을 바친 애국자인가? 역사학계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과연 국부(國父)라 칭송받을 만한 행적을 생을 통해 보여주었나? 나라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을 놓고 내리는 후대의 평가는 보는 시각과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의 큰 혼란기에 국정을 책임졌던 막중한 위치에 있었던 분이었다.

누구에게나 공과(功過)는 있다. 그러나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 소위 훌륭하고 거룩한 삶의 본보기로 인정하는 인물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저마다의 위치에서 사회와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애를 일정 부분 할애했고 그 소명감을 감당하며 일생을 통해 이를 실천했던 삶이었다. 진정성이 있었고,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말이 쉽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이기에 그분들의 생은 더욱 빛난다.

최근에 일본 야마구치현의 도서관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에 망명정부 설립을 시도했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당시에 그분은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이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불과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에 일본 정부에 망명정부 설립을 요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들에게는 안심하라고, 피난 갈 필요가 없다고 방송연설을 하면서 취한 행위였다.

망명정부를 일본에 세우려 했던 의도는 당사자인 그분과 그분의 측근들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확인할 수 없으나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 겨우 이틀 뒤에 대통령이 한 나라의 정부를 일본으로 옮기려 했던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라가 망해서 국민들을 모두 데리고 가려 한 것도 아니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망명정부 설립 요청에 포함되었던 5만 명이라는 인물들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선정한 것일까. 그게 나라 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이 내릴 판단이었나?

그분은 일제강점기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전력이 있었다. 거기에서 망국에 분노하고 교포들을 독려해 독립운동을 했다지만 미국은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된 지역이었다. 목숨을 걸고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죽음의 전장에서 전력했던 많은 분들의 희생이 기억되고 있는 마당에, 36년 동안 더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준 바로 그 나라에 망명정부 설립을 요청했다니, 아무리 되풀이 생각해 봐도 그 분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길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의 우선적인 자격은 그가 백성을,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을 것이다.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왕, 국민을 사랑하지 않는 대통령을 둔 나라의 불행은 불 보듯 뻔하다. 나라가 전란에 휩싸이고 길 잃은 국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데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과 생사를 함께해야 할 대통령이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려 한 걸 두고도 굳이 분분한 평가를 내려야 할까.

대한민국은 이제 겨우 열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대통령을 경험했던 나라다. 그분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리는 건 후대를 위한 선대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다. 역사 왜곡은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후대의 역사관과 가치관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 행위를 그토록 비판하면서 왜 우리는 정작 우리의 거울은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것인지 그럴 듯한 포장지로 자꾸만 사실과 진실의 내용물을 가리고 덮어두려고만 하는 것인지.

교정이 필요하고 재인식이 필요한 부분은 지금 당장 포장지를 뜯어내어 확인해야 한다. 이를 후대의 몫으로 남겨두는 건 당대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후대가 보다 훌륭한 대통령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텐데 말이다. 그분들의 인생을 포장하고도 모자라서 거기에다 무늬까지 덧씌우는 허황된 노릇 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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