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며
이사를 하며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7.2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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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지난 토요일 이사를 했다. 12년 만의 이사다.

이순을 훌쩍 넘긴 나이처럼 고물과 퇴물이 되어버린 세간들을 싸들고 아내 중심의 이사를 갔다. 

젊은 시절엔 밥 먹듯이 이사를 했다. 13평 서민아파트를 전세 얻어 신접살림을 꾸린 후, 천정부지로 뛰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거의 일 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때까지 12번도 넘게 이사를 해, 아내가 해온 장롱이며 화장대가 누더기로 변했지만, 살림 키워가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살았다. 

그때는 가난했으므로 다들 그렇게 살았다. 

아무튼 이번 이사가 내 집 마련 후 세 번째 이사이다.

우암산 자락과 배수지 언덕 숲 사이에 위치하여 공기 좋고 조용해 마음에 들기로 10년 된 구택을 매입해 입주했다. 

숲이 보이는 전망 좋은 작은 방에 서재도 꾸몄으니 자족한다.

떠돌이 인생, 이만하면 되지 않나 싶어 스스로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포장이사를 했다. 

하지만 버릴 짐을 선별하고 버리는 일이 내 몫이라 고역을 치렀다.

공직생활 하면 남는 게 명패와 기념패뿐이라더니 내 꼴이 그랬다.

부서를 옮길 때마다 제작한 명패와 재직 중 받은 감사패 공로패 기념패들을 제다 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자식들에게 짐이 될 것이기에 죽기 전에 내 손으로 정리해야 될 몫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름 석 자와 사진이 들어있으므로 일반 잡쓰레기처럼 쓰레기봉투에 버릴 수 없었다. 

궁리 끝에 공사하는 후배에게 갈아줄 것을 정중히 부탁하고 버렸다. 

다음으로 정리할 것은 사진 액자들이었다. 60여 년의 세월만큼이나 집안 구석에 감춰져 있던 액자들이 참으로 많았다. 

아이들 돌 사진 액자부터 학교 졸업사진 액자와 각종 행사 때 찍은 사진 액자들이 두 상자도 넘었다. 

일부 의미 있는 사진만 꺼내놓고 모두 버렸다.

그 다음은 책 정리였다. 

매달 홍수처럼 배달되는 월간지와 계간지는 물론 평소 눈길가지 않던 책들을 모두 버리기로 했다.

10박스가 넘는 무거운 책들을 들고 내려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인이 일러준 대로 고물가게에 전화했더니 고맙다며 제다 가져가 시름을 날렸다. 

이어서 창고나 장롱 속에 처박아 놓고 평소 쓰지 않았던 짐들을 가려냈다.

몇 년 째 입지 않았던 옷가지와 철 지난 전자제품과 가재도구들도 버렸다.

선별도 고된 작업이었지만 내다버리는 일은 더 큰 고역이었다. 

딱지를 사서 가구들과 전자제품들에 일일이 붙여야 했고, 대형 쓰레기봉투를 사서 버릴 짐을 가득 넣어 3층 계단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 했기 때문이다.

허리 협착증으로 고생하는 나에겐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버렸는데도 이사 가서 보니 버려야 할 짐들이 또 쏟아져 나왔다.

아직 쓸 만한데 자원 낭비하는 것 같아 미안함도 없진 않았으나, 애써 버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이사를 접고 싶다. 

하지만 3년 후에 퇴직하는 아내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 

막내아들 결혼하면 아파트 문 걸어 잠그고 이곳저곳 여행 다니며 편하게 살고 싶단다.

그래서 한 번쯤은 더 이사해야 될 것 같다.

그때는 아마도 지금 짐의 절반은 또 버리고 비워야 될 것이다. 

젊었을 때는 집안 가득 채우는 게 보람이었지만, 나이 들어 삶의 군더더기를 지우고 버리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사를 하며 버리고, 비우고, 물려주는 미학을 배운다.

이사도 삶의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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