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의 즐거움
시골살이의 즐거움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7.2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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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삶에는 목표가 있는 것일까? 삶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삶을 출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삶을 설명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답이 될 수 있는 말은 즐거움일 것이다. 삶의 양상은 각양각색으로 다를 수밖에 없지만 즐거움이라는 요소 하나로 그 삶의 성패를 따지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즐겁게 사는 것일까?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가 나름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 시골살이의 즐거움(田園)
萋萋芳草秋綠(처처방초추록) : 우거진 풀들 가을에도 푸르고
落落長松夏寒(낙락장송하한) : 늘어진 긴 소나무 여름에도 시원하다
牛羊自歸村巷(우양자귀촌항) : 소와 양들은 동네 길로 돌아오고
童稚不識衣冠(동치불식의관) : 아이들은 관리들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 번화하지만 삭막한 도시와는 달리 시골은 여름이면 온갖 풀들의 녹색 향연이 벌어진다. 무성하게 자란 풀들은 여름 내내 푸른 빛을 발산하고 가을까지도 그 빛이 바래지 않는다. 돈과 명예와는 거리가 먼 하찮은 풀들이지만 이 풀들이야말로 시골살이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사람들은 우거질 대로 우거진 푸른 풀을 보면서 그 싱싱한 생명력에 감탄해 마지않으면서도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돈이나 명예 같은 인간사의 부질없음을 깨닫고는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음속의 근심이 사라지고 한가롭고 평화로운 느낌을 갖게 된다. 삶의 진정한 즐거움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사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여름날 시골살이에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푸른 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기슭에 우뚝하게 서 있는 한 아름드리 낙락장송(落長松)은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시원한 바람 소리를 내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처럼 품이 넉넉한 소나무를 보고 여름 더위를 잊곤 하는 것이다. 여름날 시골살이의 백미는 아마도 저녁에 주로 볼 수 있는 목가적(牧歌的) 분위기일 것이다.

아침나절 먼 들판으로 풀을 뜯으러 갔던 소와 양이 저녁이 되면 스스로 알아서 마을로 돌아오곤 한다. 이러한 평화롭고 한가한 모습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골살이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이다. 욕심과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인 시골에서도 어린 아이들은 특히 그러하다. 돈이 무엇인지, 명예가 무엇인지, 출세가 무엇인지 아예 개념조차 없는 시골 아이들은 높은 벼슬아치를 봐도 알아보기는커녕 조그만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과연 돈과 명예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진 게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돈과 명예 때문에 인생의 참된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돈과 명예라는 인간적 욕망과 무관하게 운행되는 자연의 모습과 인간의 삶이 혼연일체가 될 때 느낄 수 있는 삶의 즐거움은 시골살이가 주는 선물일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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