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삼계탕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7.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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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초복이었다.

지난주 여학교 때 친구로부터 카톡을 받고 약속한 날이다. 부지런히 도자 작업하던 도구들을 정리하고 지하실을 나왔다. 예술의 전당 후문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깜빡이를 넣은 곳으로 길을 건넌다. 승용차에 앉자 친구의 밝은 얼굴이 가라앉은 내 마음을 모두 몰아낸다. 재잘재잘 우리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2년 전 퇴직할 때부터 만나 밥 한번 먹자고 한 것이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오늘에 이르렀다. 친구는 오후에 학원 수강생 강의가 있는데 나를 위해 틈새의 시간을 냈다. 세월이 지나 날씬했던 우리는 여기저기 군살이 붙어 중년을 훨씬 넘어 노년의 대열에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

눈 밑의 잔잔한 주름도 시간 속에 흔적으로 곱게 남았다. 그렇지만 마음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탄력을 받는다.

우린 여학교 시절부터 있었던 청주시청 주변에 있는 삼계탕 집으로 향했다. 보슬비가 곱게 내린다. 우산을 받쳐 들고 부지런히 발길을 옮긴다.

복날이라 그런지 장날처럼 많은 사람이 북적인다. 두 사람이 앉을 자리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예약된 자리 벽 쪽으로 두 자리가 나서 주인이 안내한다. 바로 삼계탕을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먹는 점심은 감칠맛이 제법 난다. 뽀얗고 연한 닭살을 찢어 소금에 찍어 먹는다. 삼계탕의 뱃속에서 파낸 찹쌀밥을 떠먹으며 옛날을 떠올린다. 따끈한 국물 속에 녹아있는 지난날들. 생각해보니 아련하다.

소녀 시절 유난히 땀을 많이 흘려 더위를 탔다. 여름철 아침 시골의 등굣길은 손수건을 짜면서 다녔다. 그렇게 50분 남짓하게 부지런히 걷다 보면 교복의 등이 다 젖는다. 땀이 많이 나서 학교에 도착하면 힘이 쪽 빠졌다. 이렇게 여름을 나는 것이 어린 나이였지만 참 고되었다.

어머니는 여름이면 닭을 사다 삼계탕을 끓여 주셨다. 닭의 뱃속에는 마늘과 찹쌀, 그리고 가끔 대추도 넣으셨다.

양은 솥에서 요리가 다 되면 구수한 내음이 시골의 울안에 가득하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삼계탕의 구수한 내음은 코를 자극한다.

우리는 두레반 상에 어머니께서 요리해주신 닭을 가운데 두고 닭다리 하나씩을 들고 소금을 찍어 먹는다. 이마엔 땀이 철철 흐른다. 서로 더 먹으려 닭 그릇으로 손이 자주 드나들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렇게 어머니는 자식들의 건강을 챙기셨다.

내가 우리 아이를 키울 때다. 그땐 마켓에서 삼계탕 할 수 있게 준비된 닭을 사다 물만 부으면 되는 것으로 몇 번 해 준 기억만 어렴풋이 난다.

오늘도 삼계탕을 먹으며 가족 생각이 난다. 아이들 다 출타하고 어른만 남은 적적한 집에 오늘 같은 날 한번 끓여도 되련만 이젠 힘겨운 생각이 먼저 든다. 나만 이렇게 맛있게 먹는 것이 조금은 마음이 쓰인다.

친구는 이런 나를 위해 우리 친정엄마처럼 복날을 택해 세심하게 배려해주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두 자신 위주로 변해가는 세상에 고마울 뿐이다. 눈가가 촉촉해진다. 여러 사람에게 베풀기를 즐겨 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내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식사 후 분위기가 편안한 찻집에서 그동안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보다 아주 오래전 퇴직을 한 그녀는 퇴직한 친구들에게 식사를 함께 나누었단다. 그게 어디 생각대로 쉽단 말인가. 남을 배려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삼계탕 속에 녹아있던 친구의 사랑을 오래오래 잊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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