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은 인생길
녹슬은 인생길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7.1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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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유행가 가사처럼 휴전선 달빛 아래 녹슬은 기찻길만 있는 게 아니다.

오래된 쇠붙이와 철근만 녹이 스는 게 아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녹이 슨다.

아파서 녹이 슬고, 수신제가하지 못해 녹이 슬고, 탐욕과 허명에 빠져 녹이 슨다.

우정도, 사랑도, 의리도 끊임없이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식고 소원해져 마침내 쓸모없는 시뻘건 녹으로 산화한다.

이처럼 인간사에도 녹슬은 인생길이 도처에 있다.

그러므로 어찌 녹슬은 철길에게만 ‘어이해서 핏빛인가 말 좀 하렴아’하고 다그칠 수 있으랴.

가슴에 피멍든 녹슨 사람들에게도 그리 채근하는 것이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는 기찻길이 아니다. 그저 고철길일 뿐이다. 기찻길은 기차가 부지런히 왕래해야 윤이 난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꿈과 사랑과 긍정의 에너지가 왕성할 때 인생살이도 윤이 난다.

휴전선의 기찻길은 남북이 가로막혀 철마가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한다.

철마의 왕래가 끊긴지 어언 70년, 녹슨 철길이 분단의 아픔을 서럽게 웅변한다.

인생길에 생로병사가 있다.

누구나 종당에는 늙고 병들어 죽는다. 더러는 교통사고 같은 불의의 사고로 늙기도 전에 죽음을 맞기도 하고, 아주 드물게는 100수를 하다가 잠자듯 영면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곱게 늙어야 한다. 아프지 않고 늙으면 금상첨화다.

아프지 않으려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야 한다. 적당한 운동과 스트레스 비우기는 기본이다.

곱게 늙으려면 마음이 고와야 한다. 탐욕과 허명에 빠지면 고운 상도 일그러진다. 배려와 긍정의 마인드로 정제된 생활을 하는 이는 나이가 들어도 마음과 얼굴이 해맑다.

그렇지 않으면 몸과 마음에 녹이 슨다. 녹이 덕지덕지 쌓이면 조로하고 일찍 병사한다.

수신제가해야 한다.

부단히 자신의 극기력과 경쟁력을 키우고, 가정을 꾸렸으면 가화만사성해야 한다. 여기에 균열이나 과부하가 생기면 바로 녹이 슨다.

탐욕과 허명을 경계해야 한다.

탐욕과 허명에 빠지면 사리분별력이 떨어지고 배려심을 잃고, 평정심에 녹이 슬어 파멸로 이어진다.

우정도, 사랑도, 의리도 모두 영원을 추구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30년 우정도, 50년 동지도 어느 날 원수가 되어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무서운 세상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서로 주고받지 않으면 우정도 한순간에 녹이 슬어 소원해지고 견원지간이 된다.

사랑하는 연인도, 백년해로를 약속한 부부연도 금이 가면 하루아침에 남이 된다.

죽자 살자 하던 사랑도 끊임없이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식고 멀어진다. 사랑도 녹이 스는 것이다.

의리도 마찬가지다.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의리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의리의 공감대가 줄어들면 틈사이로 녹이 스며들어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처럼 방심하고 한눈팔면 녹이 슨다.

늘 갈고 닦고 조이지 않으면 잡초처럼 돋아나는 녹. 그 녹을 무시로 제거하며 살아야 하는 게 인생살이다.

그대에게 묻는다.

지금 그대의 인생길은 녹슬지 않았는가?

지난 삶에 찌든 녹이 많았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더 이상 부식되지 않도록 찌든 녹을 닦아내시구려.

무거운 짐도 녹이니, 여태껏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질구레한 일과 잡동사니 짐들도 모두 버리고 비우시구려.

우리 남은 생 그렇게 버리고 비우며 홀가분하게 살자구요.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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