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대하기
더위 대하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7.1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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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다. 보통 산으로 바다로 더위를 피해 가는 동적인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와는 반대로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며 한 곳에서 꼼짝하지 않는 정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일도 종종 있다. 이는 더위를 피하지 않고 마음으로 다스리며 즐기는 방법이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후자를 선택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여름날(夏日)

東窗晚無熱(동창만무열) : 동쪽 창문은 저녁이라 덥지 않고
北戶涼有風(북호량유풍) : 북쪽 문으로는 서늘하게 바람이 불어 오네
盡日坐複臥(진일좌복와) : 종일토록 앉았다 누웠다 하며
不離一室中(불리일실중) : 떠나지 않고 내내 방안에 있었네
中心本無繫(중심본무계) :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얽매임이 없으니
亦與出門同(역여출문동) : 이 또한 문 밖으로 나온 것과 마찬가지라네

※ 무더운 어느 여름 날, 시인은 어디선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더위를 피해 산으로 물로 갈 법도 하지만, 시인은 방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다. 

문 닫아놓았다 해서 못 들어 올 더위가 아니지만, 시인은 짐짓 더위의 내방을 모르기라도 하는 듯, 딴청을 부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인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뒤로 문 밖 출입을 하지 않고 저녁까지 내내 방 안을 지키고 있었다. 그 사이 찾아온 손님이 하나 있었으니, 여름 더위가 그것이다. 홀로 있는 시인에게 손님은 반가운 존재여야겠지만, 시인은 찾아온 손님을 반가워하기는커녕 본 송 만 송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 손님은 여름이면 누구에게나 찾아가지만, 누구도 반기지 않는 불청객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모르는 척 하고 있는 사이, 이 손님은 제 풀에 꺾여 저절로 물러나고 말았다. 달갑지 않은 손님을 대하는 시인의 내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녁이 되어 해가 들어가니, 해에서 제일 먼 방 안의 동쪽 창부터 더위가 가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으로 난 문 쪽에서는 시원한 기운이 돌았는데, 열린 문으로 한 줄기 바람이 들어왔던 것이다. 열기가 가신 동쪽 창, 시원한 바람이 들어 온 북쪽 문, 이미 방 안에는 낮 동안 끈질기게 머물러 있던 불청객인 더위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시인은 더위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방 안을 떠나지 않았다.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방 안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문 열고 나가 시원한 곳을 찾아 가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으니, 그 열쇠는 바로 마음에 있었다. 마음으로 더위에 얽매이지 않으니, 더위가 전혀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여름 더위는 무작정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산으로 물로 시원한 곳을 찾아가는 동적인 방법만으로 더위를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다. 마음에 화가 그대로라면, 피서지가 도리어 더 짜증스러운 곳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이 더위를 개의치 않으면 더위는 저절로 물러나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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