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짐승이었다
그날 밤, 나는 짐승이었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5.07.1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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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영숙 <시인>

상큼한 풀 향기에 마비돼 몸이 미동이다. 작은 바늘이 11시를 향하는 다랑이의 밤, 일행은 논배미 아래 실개울로 내려갔다. 앱으로 받은 별자리를 열어놓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6번과 7번 별자리 간격의 다섯 배 거리에 있는 북극성, 그로부터 또 다섯 배 거리에 있는 카시오페이아 왕비 자리, 그녀의 남편 케페우스, 안드로메다 공주, 페르세우스 사위 등, 에티오피아 왕족의 별자리를 탐색하느라 눈이 바쁘다.

인간의 마을에 하나둘 불빛이 사윌 무렵, 지상의 줄어든 불빛만큼 하늘에는 고요한 별빛이 늘어간다. 동화 속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애반딧불이 무리가 소리 없이 날아간다. 얼마 만에 보는 정겨움인가. 요란하지 않고도 제 몸 통째로 반짝이는 그 작은 몸들이 사랑스럽다. 

밤하늘은 큰불 작은 불 걸어놓고 땅을 비추고, 반딧불이 온몸으로 숲을 비추는 고요한 시간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눈에 머문 듯한 ‘별이 빛나는 밤’ 풍경이다. ‘소쩍소쩍, 개굴개굴, 그륵~그륵, 꽥꽥’ 저마다 존재를 알리는 다양한 소리로 산속의 밤은 심오한 경전이다. 

야생 생물의 독경에 귀 열어 두고 누워 있는데 느닷없이 ‘부스럭’ 소리가 난다. 머리가 쭈뼛거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소리 쪽을 바라보니 볼트 강한 눈빛 하나가 쏘아 본다. 로드킬(Road Kill) 당하는 짐승들이 이런 느낌일까? 몸이 순간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다. 평상 아래로 휴대전화기 나뒹구는 소리만 상태를 알릴 뿐이다. 잠시 후 혼이 빠진 사람처럼 다랑이 논길을 따라 줄행랑을 쳤다. 후다닥 소리에 놀라, 개울에서 가재를 탐구하던 일행들이 허리를 펴고 내 쪽을 바라본다. 무슨 일이냐는 무언의 몸짓을 보내지만, 막대기처럼 우두커니 있었다.

생태 환경운동가인 그들은 한참 가재가 사는 서식지를 탐구 중이다. 돌을 모아 가재들의 터전을 만드는 작업이 끝났는지 자초지종 묻는다. 눈빛이 사나운 시커먼 짐승 한마리가 다가왔다는 말에 모두 배꼽을 잡는다. 조금 전의 그 짐승은 연꽃 피는 다랑이 원두막 주변에 사는 어린 길고양이라는 것이다.

덩치 크고 시커멓던 존재가 그 작은 고양이었다니, 그러고 보면 개개인이 지닌 감각의 세계란 얼마나 부정확하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인가. 

일행이 드립해온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에야 마라톤을 달리던 가슴이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시인의 가슴에 천사가 산다고?

그날 밤, 그곳에서 나는 한 마리 거대한 짐승이었다. 몸을 뒤집고 바르르 떠는 털 두꺼비장수하늘소 임종 앞에서, 방아벌레, 버섯벌레, 반딧불이 관찰한다고 아무렇지도 않듯 휴대전화 불빛을 휘두르고, 흙 속 생물들의 꿈틀거림도 인식하지 못하고 망아지처럼 날뛰었으니…,

인공의 불빛에 놀라 기겁하던 고양이, 그 눈에 비친 나야말로 도심에서 올라온 무시무시하고 교활한 짐승일 것이다.

가슴을 열고 온몸으로 시를 쓰는 일, 시처럼 사는 삶이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세계를 읽어내고 대상의 이름을 알아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읽어낸 대상의 입장에서 호흡해 보는 일이다. 요란하지 않고도 온몸으로 발광(發光)하는 반딧불이처럼, 묵묵히 제 몸만큼 빛을 발하고 그림자를 만들며 벽을 두지 않는 작은 짐승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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