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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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07.0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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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공기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가문 바람이 가끔씩 어깨위로 내려앉아 여름임을 알리는 저녁이다. 왜 하필 가게 이름이 공기다방일까 생각하며 별빛을 머리 위에 얹고 다방 문을 열었다. 지역의 화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는 곳이다. 그들이 사용하지 않는 저녁 시간을 틈타 매주 화요일 모이기로 했다. 테이블이 세개 있는 작은 공간이다.

전에는 커피를 1000원에 판 듯 가격표와 메뉴판이 그대로 있다. 다섯명이 모였다. 일상에서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시라는 공통된 화제아래 모였다. 한 학기동안 함께 시를 배웠기에 어색함은 없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만나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각자 써온 시를 읽고 돌아가면서 평을 해주고 시를 다듬어 주기도 하고 첨삭도 해준다.

시는 참 어렵다. 어려워서 자꾸만 도전하게 한다. 언어를 좀 더 정교하게 사용하고 싶은 마음과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시어를 구사하고 싶은 욕심이 나를 이곳에 머물게 한다.

수업을 마친 후 처음으로 그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했다. k는 참 여성스럽다. 덜렁덜렁 맨손으로 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한 나와는 대조적으로 수박을 예쁜 통에 가득 잘라왔다. 대전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목소리 넉넉한 c는 시 낭송가라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는 i는 진천에서 퇴근하고 왔다고 한다. d는 40년을 시와 씨름했다고 한다. d는 나보고 쏠로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결혼했냐고 묻는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내가 희스테리컬하게 보이나? 나에 관한 어떤 종류의 진리라도 그것을 파악하려면 타인을 거쳐야 한다는 샤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에게 투영되는 나의 모습이 진실 일 게다.

세월에 마모되어 둥글거릴 때도 지났는데 아직 내겐 가시가 많은가 보다. 둥글둥글 살자고 다짐해 본다.

서로의 이야기로 도란도란 시간가는 것도 잊을 무렵, 독일에서 유학을 했다는 공기다방 주인이 베레모를 쓰고 들어온다. 문단속을 하러 온 것이다. 언제든지 이 공간을 활용해도 좋다고 한다. 앞으로는 문화가 곧 산업이기 때문에 지역의 문화예술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장소 제공료를 내고 싶다고 하자 정중히 거절한다.

그림만 그리면 어렵지 않냐고 걱정 어린 눈빛으로 i가 묻는다.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선택에 후회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미소 속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나름대로 자신의 색깔을 갖고 인생의 무늬를 그려가는 그가 부럽다. 나는 아직도 시를 써야할지 수필을 써야 할지 아니면 소설을 써야 하는지 선택을 유예하고 헤매고 있다.

‘인생은 B(birth)와 D(d eath) 사이에 C(choice)다’라는 샤르트르의 말을 곱씹어 본다.

살면서 매순간 난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의 길을 통해 여기까지 걸어왔다. 내가 선택해서 그린 내 인생의 그림이 과연 잘 그려진 그림인가 자문해 본다. 아니 최선의 그림이었나 생각해 본다.

가끔은 내 삶을 되돌아보며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나를 토닥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은 다른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간만은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선택하지 않은 상황마저도 나의 선택이라는데 그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나 의문을 제기해 본다.

오늘,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후회 없이 사는 그를 보며 나를 되돌아본다.

공기다방 문을 열고 나오자 열기를 품은 밤바람이 훅~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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