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슴이 뛴다
다시 가슴이 뛴다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5.07.0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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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반영호 <시인>

본격적인 여름이다. 더위를 못 참는 북방계 체형이라 여름이 무섭다. 무더위를 견뎌야 할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또 여름엔 더위도 더위거니와 장마가 먼저 온다. 이때 자칫하다간 습으로 인해 옷들이 상할 수 있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옷장정리를 하고 습기제거제를 이곳저곳에 넣었다. 그런데 속옷들 틈에 빨간 티가 끼어 있다. 붉은악마. 아! 그때 2002년 월드컵. 벌써 13년 전인가 보다. 대한민국 짜잔짠짜차 엇박자 장단에 필승 코리아를 외쳤던 그때….

붉은 악마를 회상해 본다. 계절도 꼭 이맘때다. 너나 할 것 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목이 터져라 외치던 오~ 필승 코리아, 그 뜨거운 열기. 광화문 광장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또 해외에서까지 5000만 온 민족이 다 함께했던 시간이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다. 스스로 일어서고 뛰쳐나갔던, 막을 수도 막아지지도 않는 그 벅찬 설렘은 언제까지나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스포츠의 힘이기 전에 민족과 조국애의 극치리라. 누구랄 것도 없이 나라를 위해 뛰는 열사이고 응원자들은 하나같이 애국자였다. 저들의 간곡한 염원은 무엇일까. 저들이 피터져라 외치는 필승 꼬레아는 단순히 축구승리였을까.

한국 축구팀은 12명이다. 그라운드 밖에 1명의 선수가 더 있기 때문이다. 12번째 선수가 바로 붉은악마다. 한일 월드컵 당시 일렁이는 붉은 물결의 파도는 세계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할아버지도, 손자도 비더레즈(BetheReds·붉은악마가 됩시다)를 입고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다. 붉은색 유니폼은 한국 국가대표팀의 상징이다. 붉은색은 태극기 문양에서 따왔다. 한국 팀이 붉은색 상의를 입고 세계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 때다. 당시 태극전사들은 붉은색 상의와 푸른색 하의를 입고 세계무대에 데뷔했다. 본격적으로 붉은 전사의 팀 컬러를 유지하기 시작한 것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다. 이때부터 한국 대표팀은 붉은색 상의와 흰색 하의를 입고 세계무대를 누볐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박창선이 월드컵 첫 골을 넣으면서 붉은색은 한국을 대표하는 색깔로 자리매김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핫 레드’로 무장하며 4강 신화의 역사를 썼다. 이후 새 유니폼이 발표될 때마다 색깔이 조금씩 진하고 선명했지만 기본 색상인 ‘핫 레드’는 유지되고 있다. 붉은악마는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적극적 참여를 통해 축구를 즐기려는 축구팬들에 의해 구성되었으나 자율적이고 민주적 활동 원칙을 중시해 영국의 훌리거니즘(Hooliganism)과 같은 폭력적 응원문화로 변질되지 않았다.

야구를 좋아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나뿐 아니라 아들도 광적이다. 10만원을 호가하는 이글스 유니폼을 서슴없이 사 입고 천리를 마다않고 경기장을 찾는다. 사실 붉은악마 티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당시 5000원밖에 안 했는데 10만원은 장삿속이 짙은데 야구장에 가보면 상당수가 지지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그리고 응원 열기는 하늘을 찌른다. 물론 응원이지만 발악하듯 질러대는 고함과 몸짓은 쌓인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린다.

물론 월드컵 축구의 붉은악마 응원과는 비교할 수 없다. 국가와 국가 간의 시합과 국내 지역팀과의 경기이니 당연 그 범위부터가 작고 한계가 있으나 거의 동시에 치러지는 각 구장의 관객을 고려해보면 이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글스팀을 응원하는 것은 연고지가 같은 충청권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지역패권주의 타파를 외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처럼 스포츠에서도 역시 우리라는 지역적 패 갈림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번 주말엔 대전에서 벌어지는 NC와 이글스 경기를 예약했다. 오랜만에 월드컵 때의 붉은악마가 되어 목청껏 외쳐봐야겠다.

/반영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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