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모 연가
서사모 연가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7.0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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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서사모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줄임말이다.

30대 중반에 연을 맺고 30여 년을 함께 한 일곱 부부의 모임 이름이다. 그런 서사모를 반추하며, 부부모임을 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선남선녀에게 이 글을 바친다.

모임도 사계가 있다. 

잎이 무성한 여름이 지나면 낙엽 지는 가을이 오듯, 모임도 세월 따라 변한다.

40대 까지는 시간만 나면 함께 모여 산으로 강으로 섬으로 갔다.

함께 해수욕을 하고, 엉덩이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눈썰매를 타기도 했다.

민박집 단칸방에서 부부들이 뒤엉켜 새우잠을 잤지만 불편을 몰랐고, 만나면 그저 신나고 즐거웠다.

신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노래방에 가서 한데 어울려 춤추며 노래했고, 밤새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50대엔 남편들의 사회적 지위도 올라가고 각자의 삶이 바빠져서 만나는 빈도나 술 마시는 기회가 점차 줄게 되었다.

골프열풍 덕에 스크린골프도 하고, 단체로 골프라운딩을 하며 연대감을 이어갔다.

60대가 되니 직장에서 은퇴를 하게 되고, 자식들 출가도 하고, 이웃하던 거처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탁구 배드민턴 등으로 취미생활도 분화되니 만나는 횟수가 현저히 줄게 되었다.

아무튼 서사모는 부인주도 모임이다. 부인들이 결정하면 남편들은 경비내고 따르는 구조다.

맏언니인 현덕이 엄마는 원샷을 외치다가 제일 먼저 술에 취해 남편 무릎에 쓰러지는 순수한 여인이다. 집도 절도 없는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 가문을 일으켜 세운 참으로 장한 여성이다.

기독교 권사인 홍경이 엄마는 맹렬여성이다. 전업주부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업을 벌이고 확장하는 단단한 여자다.

남편과 함께 7080 춤을 멋들어지게 추는 멋쟁이다.

인철이 엄마는 늘 환한 웃음을 짓는 친화력 높은 재주꾼이다.

오카리나와 플롯을 곧잘 부는 공주과의 영원한 소녀다. 남편과 자신에게 닥친 병마를 강인한 정신력으로 극기한 의지의 여장부이기도 하다. 

성기 엄마는 심지가 단단하고 내공이 깊은 여인이다. 자신은 웃지 않으며 시골 버전으로 천연덕스럽게 동료들의 배꼽을 빼놓는다.

아들 딸 출가시켜 놓고 숲해설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슬하에 자녀가 없는 의왕 댁 왕여사는 인기 짱이다.

어디서 정보를 캐오는지 아는 것도 많고, 모임 내내 서울버전으로 사람을 웃긴다. 에어로빅과 볼링을 즐기며 수시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열정의 화신이다.

내 아내인 상준이 엄마는 끝에서 두 번째다.

유일하게 직장 생활하는 범생이다. 모임의 허드렛일은 말없이 하는 착한 여자다.

막내인 승철이 엄마는 키 큰 미루나무다. 

사위를 얻었지만 모임의 영원한 총무다. 나무처럼 그늘이 되어주는 산소 같은 여인으로, 노래도 수준급이고, 못하는 운동이 없는 원더우먼이다. 

인철이 엄마와 성기 엄마와 왕 여사는 여고 동창이고 모임의 원천이다. 나머지 넷은 인철이 엄마와의 인연으로 한 배를 탔다.

성기 엄마는 대만인 사위를, 승철이 엄마는 미국인 사위를 얻었다. 글로벌 가족이 된 것이다.

이처럼 회원들의 머리에 이슬이 내리고, 스마트폰에 손주들 사진을 올려놓고 손주 자랑하는 초로가 되었다. 

주량도 현저히 줄었다. 박스채로 마시던 주량은 어디 가고, 한 잔 술도 들었다 놨다 한다.

이젠 격정적인 모임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만나서 반갑고, 곱게 늙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축복인 그런 서사모였으면 한다.

100세 시대다.

함께 60년 도반이 되려면 건강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대여 부디 강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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