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릴 권리도 있다
틀릴 권리도 있다
  • 반영억 신부 <청주 상당노인복지관장>
  • 승인 2015.07.0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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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반영억 신부 <청주 상당노인복지관장>

살아가면서 실수와 잘못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것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더 없이 귀한 디딤돌로 삼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잘못을 하면 그에 대한 벌이 따르게 마련이다. 드러나게 어떤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해도 마음속의 불안감을 느꼈다면 바로 그것이 이미 벌이다. 그렇다면 벌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고치면 된다. 틀리고 싶지 않고 잘못되기를 원하지 않아도 인간의 연약함으로 실수와 잘못을 했다면 인정하고 새 출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진리 안에 성장하는 비결이다.

요즘 정치권에는 많은 혼돈이 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국회와 정치권을 ‘배신의 집단’으로, ‘심판의 대상’이라고 비난하며‘국민들이 선거에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정치적인 책임을 물어 달라.’ ‘정치가 정도를 가지 않고…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을 태연하게 남을 향해서 말하고 그것을 가장 큰 목소리로 꾸짖는 것처럼 어색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잘못되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비정상을 정상화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에는 배신자도 있고, 못된 사람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내가 배신자이고, 못된 사람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일이다. 모두가 백성을 위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아마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아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서로를 위하는 방법이 다르다면 다름을 틀렸다고 몰아세우지 말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았으면 좋겠다. 설사 한 사람만 옳고 모든 사람이 틀렸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적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듯이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할 많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것이 틀린 말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틀릴 권리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회복할 때 모든 것이 풀어질 것이다. “문제를 문제시하라” 인정하는 것이 쇄신의 시작이다. 잘한다고 한 것이 실수일 때가 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것이 큰 힘이 되었다는 알게 된다. 그렇게 보면 실수 한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틀렸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정말 나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그렇게 냉정하고 무자비하게 비난해야만 할까? 함부로 비난하지 말자! 물론 비난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심판하지 말고 오히려 나를 바라보자. 성경에서 예수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단죄하는 이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였다. 배신과 심판에 앞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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