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없는 사회를 위하여
보복 없는 사회를 위하여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7.06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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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요즘 보복살인, 보복폭행, 보복운전 같은 섬뜩한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다. 그것도 백주에 보란 듯이 자행되고 있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보복이라는 일탈행위에 대한민국 사회가 멍들고 있다.

콩 한쪽도 나눠먹던 배려심 많던 민초들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송받던 백의민족의 후예들이 어찌하여 이리도 성정이 강퍅해졌단 말인가?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보복의 사전적 의미는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이다. 유의어로 복수, 앙갚음, 응징 등이 있다. 

해란 이롭지 아니하게 하거나 손상을 입힘, 또는 그런 것이다.

마땅히 남에게 해를 입혔다면 입힌 만큼 해를 받아야 한다. 그게 바로 인과응보의 원리다. 

그러므로 평소 악덕을 멀리하고 선덕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 

윤리교육과 공중도덕교육의 요체가 거기에 있다. 

선덕의 시작과 끝은 양보와 배려에 있다.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질 때 선덕이 싹트고 선덕이 꽃핀다. 

황금만능주의와 일등지상주의와 개인이기주의의 만연으로 양보와 배려가 설자리가 없으니, 사소한 불편이나 불익을 참지 못하고 욱하여 곧바로 앙갚음을 하는 것이다. 

보복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관성이 있어 보복은 더 큰 보복을 낳는다. 당사자는 물론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피폐케 하는 악성 바이러스가 된다.

언론이나 SNS를 통해 회자되는 대다수의 보복행위가 이처럼 극히 사소한 일에 열 받아 순간 욱해서 생긴 참극이었다. 순간의 분함을 참지 못해 일어나는 불행이자 비극인 것이다.

보복운전의 이유를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차선을 물고 자신의 차를 추월했다고, 자신의 차 앞에서 급제동을 해 놀랐다고, 심지어는 너무 저속으로 달린다고, 음악을 너무 크게 틀었다고, 전조등을 켜서 눈을 부시게 했다고 보복을 자행했다.

차에 내려서 흉기로 위협하고, 차로 밀기도 하고, 다짜고짜로 폭행부터 한다. 

특히 덤프트럭 같은 대형차가 소형차를 상대로 한 겁주기 보복운전은 도를 넘고 있다.

보복살인이나 보복폭행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을 쬐려봤다고, 건방지게 반말했다고,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묻지 마 폭행과 막가파식 살인이 이루어지고 있다.

보복의 유혹이 오는 순간 열을 세면 파멸의 화가 비켜갈 터인데 이를 참지 못하고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 참으로 고약한 사회병리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 고약한 병이 우리 사회에 더 확산되기 전에 서둘러 막아야 한다. 아니 싹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

경찰과 검찰이 철저하게 단속하고 가정과 학교와 언론과 종교와 사회단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교육하고 계몽하면 막을 수 있다.

그 중심에 인본주의가 있음은 당연지사다.

그를 통해 생명중시사상과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회적 기풍을 진작하면 된다. 

최근 보복운전 행위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경찰이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천명했다. 잘하는 일이다. 아무튼 반짝 단속으로 끝나지 말고 보복운전을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도록 일벌백계하기 바란다.

이밖에도 보복정치, 보복인사, 보복수사라는 말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정치? 행정? 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임에 틀림없다. 

이제 그 보복의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 

공포와 파괴와 불행을 낳는 보복행위와 단호하게 작별할 것을 전 국민께 호소하면서, 양보와 배려, 사랑과 평화가 샘물처럼 솟아나는 사회를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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