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바람에 빚지다
7월 바람에 빚지다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5.07.06 18: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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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수필가>

불이 당겨졌다. 오래 침잠해있던 바람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유월 초 느닷없이 훌쩍 떠났던 담양 기행을 시작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일상이 분주해지는 중이다. 지난 주말엔 강화에 다녀왔다. 물론 다른 목적이 있었지만 떠나기 전부터 마음은 ‘섬’ 이란 단어 때문에 설레었다. 

내륙에서 나고 자란 내게 바다를 배경으로 품고 있는 지명은 늘 동경의 대상이다. 강화도는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을 비롯 개국 시원부터 현대까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에 더욱 특별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혹 강화도에 갈 기회가 있거든 꼭 ‘월곳 연미정’엘 들러보라던 선배 조언에 더욱 기대감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이른 오후 도착한 강화도는 맑고 쾌청했다. 하지만 초지대교를 건널 때의 바람과 달리 들녘 곳곳엔 가뭄의 흔적들이 아프게 남아있었다. 마른 잎 사이로 돋는 새잎들이 희망처럼 간절했다. 

연미정은 월곳 돈대 안에 있었다. 문루인 조해루로 들어서니 둥근 돈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칠월 땡볕에 달궈진 성벽 안 구백년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정자를 가운데 두고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바람이 달큰했다. 오수의 유혹에 잎새 부비는 소리도 청량하게 들리는 한가로운 시간. 여유로움 속 정자 가운데 서니 푸른 물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안내문에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한 줄기는 서해로, 또 한 줄기는 강화해협(염하강)으로 흘러 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돈대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하여 그 이름을 ‘연미(燕尾)’라 하였다 한다. 강화 10경의 하나로 수도 한양으로 드나드는 전국의 조세선(租稅船)과 외국의 사신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이면서도 군사 요충지이기도 하였던 곳이라니. 1906년 화남 고재형 선생이 연미정에서 읊었다고 하는 시 연미조범燕尾漕帆을 읊조리며 물위에 천척의 배를 그려본다.

아름답고도 고즈넉한 정자의 멋에 취해 있는데 건너 보이는 산이 북한 개풍군이란 소리가 귀로 들어온다.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 다시 바라본 성벽 사이로 엉킨 철조망이 낯설게 들어왔다. 성벽아래 해병대 초소가 있는데 물 건너를 조준하고 있는 총구에 긴장감이 팽팽히 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어지럽고 낯설었다. 빼어난 풍광이 주는 낭만과 총의 조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러고 보면 강화도 같은 섬이 또 있을까 싶다. 해안을 따라 방어를 위해 펼쳐진 진과 돈대. 그리고 길게 이어진 철조망. 예로부터 지금까지 누군가가 목숨 걸고 희생하며 지켜오는 곳. 초지진 덕진진에서 예전에 만났던 아픔이 되살아나며 나는 부채를 진 듯 마음이 무거웠다. 

연세 지긋한 분이 건너보이는 산을 보라고 나무가 없이 산이 벌겋지 않냐고 산만 봐도 남북이 다르다고 일행에게 건네는 말이 씁쓸하였다. 거리가 지척인데 마음의 길은 멀기만 한가보다. 월곳 돈대는 민통선과 맞닿아 있어 차를 돌려 나와야 했다. 네비게이션만 믿고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떠났던 길에서 민통선과 만날줄이야. 언제쯤 이 낯설음이 편안해질까. 

마른 잎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던 새잎들의 간절함으로 동족끼리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들을 희망해본다. 선배가 굳이 연미정을 추천한 까닭을 알 듯도 하다. 7월 바람 덕에 갚아야 할 빚이 늘었다.천한 까닭을 알 듯도 하다. 7월 바람 덕에 갚아야 할 빚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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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구 2015-08-19 19:32:18
해군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들리곤 했던 곳이였지만 이렇게 세세한 내용까지는 알지를
못했거늘 오늘에야 다시금 회상하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