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을 라(裸)의 삶
벌거벗을 라(裸)의 삶
  • 박숙희 <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5.07.0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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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그 서른일곱 번째 이야기는 ‘직지’하권 3장 보은 현칙 화상(報恩 玄則 和尙)께서 크게 깨달은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를 참조했음을 밝힌다.

법안께서 “일찍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느냐?”고 보은 현칙 화상에게 물으시니, “청봉 화상을 보고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법안이 또 말하기를 “어떤 언구(言句)가 있었느냐?” 보은 현칙 화상은 “제가 일찍이 묻기를 ‘어떤 것이 이 학인(學人)의 자기냐?’고 물었다고 답하였다. 그랬더니 청봉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병정동자가 불을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법안이 말하기를 “상좌는 어떻게 알았느냐?”보은 현칙 화상이 답하기를 “병정은 불에 속하니 불을 가지고 불을 구하는 것은 자기를 가지고 자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법안이 말하기를 “그것은 감정으로 안 것이니 너는 불법을 알지 못한 것이다. 만약에 그와 같이 알고 내가 있는 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곧 조급증이 문득 일어날 것이다.”

가던 도중에 보은이 문득 말하기를 “법안 화상은 이 오백인 선지식이시니 내가 옳지 못하다고 말을 했으니 반드시 뭔가 장점이 있을 것이다.”

보은 현칙 화상이 문득 돌아와서 참회하고 묻기를 “어떤 것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법안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병정동자가 와서 불을 구하니라.” 보은 현칙 화상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곧바로 환하게 터져 시원하게 깨달았다.

六甲 가운데 甲乙은 木이고 丙丁은 불화란다. 보은 현칙 화상이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냐?”는 물음에 청봉 화상이 “병정동자가 불을 구한다.”고 답하였다. 병정 동자는 바로 불귀신이란다. 불이 불을 구한다는 식으로 답하신 것이겠다. 즉 불을 가지고 불을 구하는 것은, 자기를 가지고 자기를 구한다는 것이겠다.

長處(장처), 긴 곳이 있다는 것은 장점이 있다는 것이겠다. 법안 스님이 보은 현칙 화상 자신에게 틀렸다고 말한 것은 뭔가 자기보다 낫고 청봉 스님보다 나은 장처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똑같이 답을 해도 다른 것이라는 것이겠다. 대통령과 걸뱅이가 같은 말을 해도 다르듯. 실력 있는 강사가 말한 것과 실력 없는 강사가 말한 것이 다르다는 것이겠다. 즉 사람마다 깨달은 역량이 다르기 때문에 인과에 관련된 답이 다르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보은 현칙 화상의 대답을 ‘감정으로 안 것이니 너는 불법을 알지 못한 것’이라고 한 법안 선사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여 보면, 요즘 글로벌 청년들의 공통 애환 신조어처럼 ‘터럭 끝만치라도 다른 것이 있으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고 한 것과 같지 않은가.

중국에선 가진 것 없다는 뜻의 裸, 중국 발음으로 ‘뤄’가 앞에 붙는 신세 한탄 신조어로 裸婚(뤄훈)·裸創(뤄촹)으로 중국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애환이란다. 뤄훈은 집, 차, 예식을 포기한 중국판 작은 결혼식을 뜻하는 신조어이고, 뤄촹은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창업을 말하는 신조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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