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표절
  • 최 준 <시인>
  • 승인 2015.07.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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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최 준 <시인>

유명 여성 소설가의 작품이 표절시비에 휘말려 문단이 뜨겁다. ‘표절’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의 시·문장 등의 글귀를 훔쳐서 자기 것인 것처럼 발표함”이다. 

그러나 표절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한 것이어서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표절이 아닌가를 구분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문학이 ‘언어’라는 사회적인 표현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문학을 하는 이들은 언제나 표절의 가능성 또한 갖고 있다는 근본적인 위험성으로부터 아무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점이다. 

문학을 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서적들을 탐독하기는 불가능하다. 남이 쓴 책들 속의 무수한 문장과 표현들을 일일이 체크해서 거기 들어 있는 말들을 버리고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문법과 언어들만으로 작품을 써 낼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기억력이라는 게 가난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이어서 자신의 문장들과 타인의 문장을 혼동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번에 표절시비의 주인공이 된 소설가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 발표작들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된 소위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다. 당연한 노릇이지만 문학 작품도 기호에 따른 취사선택의 권리 또한 독자가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려나 문단 내외적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표절시비는 비단 한국문학의 자장에서만 나타나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아니 우리의 삶 전체가 표절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겠다. 

이 소설가의 표절이 의도했던 아니면 그렇지 않았든 돌이킬 수 없는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하다. 

문제의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에 대한 비판도 비켜갈 수 없는 현실이다. 출판사 편집자가 많은 작가의 원고들을 일일이 점검해서 표절 여부를 가릴 수는 물론 없다. 처음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의 출판사 견해가 문제다. 누구보다도 책임 있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할 굴지의 출판사에서 무작정 작가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인 점은 비난을 살 만하다.

이번 표절 사태를 보면서 마음이 씁쓸해진 건 한 유명 작가의 실수(미필적 고의일 수도 있겠지만)가 미치는 사회적인 파장과 논란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모종의 분위기 때문이다. 그악하다고 해야 할까. 작가에 대한 실망과 비난의 언사들을 쏟아내는 익명의 다수들은 마치 자신은 이 세상과 삶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떳떳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계기로 해서 근본적인 원인을 꼼꼼히 따져 묻고 이게 과연 개인의 일인지, 아니면 사회 전반에 걸쳐 파장이 미치는 중대한 일인지를 판단해 보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무겁고 가벼움을 떠나서 우리 사회는 지금 온당하고 정당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하고 있는가. 정작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불의와 기만에는 용기가 없어 몸을 사리면서 한 시인의 말대로 “작고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 건” 아닌가. 그건 아니었다고 부정하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마녀사냥’에 동참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 사회는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사회 구성원들 아무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를 주도하면서 ‘행복’ 운운하는 꼴이 우습다. 살 만한 세상은 정치가 해 준 일이 없으며 경제가 도와주지 못했다. 저 마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대다수의 익명들이 사회를 지탱하는 근육들이다. 이들이 풀어지면 사회는 지탱할 힘을 상실하고 만다. 그게 우리이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당대다. 불행한 건 아름다운 문장처럼 표절하고 싶은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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