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랜 그녀
내 오랜 그녀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07.02 17: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개구리 울음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아팠다. 머리를 텅 비우고 싶었다. 영화관에 갔다. 월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매표소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지금 바로 볼 수 있는 영화 티켓 주세요”라고 말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긴 생머리 여직원이 생긋 웃으며 좌석을 고르라고 했다. 맨 뒷줄 가운데에 있는 좌석을 찍었다. 팝콘 작은 것과 콜라 한잔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팝콘과 콜라를 들고 더듬더듬 내 좌석 번호가 찍힌 자리로 갔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돌려놓고 옆 좌석에 놓았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광고가 나오고 난 아무 생각없이 눈을 스크린에 던진 채 팝콘을 먹다가 콜라를 흡입하다 한다. 전화기의 불빛이 반짝인다. S로부터 카톡이 왔다. 방학 동안 다도 연수를 받자고 한다. 차를 마시는 법을 알고 우아하게 마시고 싶단다. 나는 일정을 묻는 톡을 날렸다. 일정이 괜찮은 듯 하여 함께 하자고 흔쾌히 톡을 보냈다. S가 어디냐고 묻는다. 영화관이라고 하자 “혼자?”라고 톡을 보내왔다. 나는 짧게 답한다. “응!” 톡이 또 날아온다. “혼자 무슨 재미로 가?” 나도 톡을 날린다. “난 나만의 세계가 있잖아. 혼자 영화 보는 게 좋아~.” 

샌안드레아스라는 영화다. 지진으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며 그 와중에 잃어버렸던 가족과 재회를 한다. 여러 가지 위기를 맞으며 해체될 뻔한 가족이 다시 결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다. 미국 영화답게 영화 마지막에 성조기를 휘날리며 국가를 광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 보다는 영화가 재미있었다.

어둠이 녹아내린 거리를 지나 집으로 왔다. 쇼팽의 야상곡을 크게 틀었다. 야상곡을 귀에 넘치도록 담으며 커피를 타서 어둠이 깔린 창가로 갔다. 애잔한 선율이 어둠에 섞여 가슴을 쿡쿡 찌른다. 나에게 지진이나 화재 등의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친다면 과연 나는 누구를 떠올릴까? 어제 보았던 그녀의 얼굴이 어두운 창문 위로 가득하다. 그녀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며칠 전 세간살이를 가져가라는 전화가 왔었다. 가져온다 한들 이미 집에 세간들이 있기에 딱히 필요한 물건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버리는 것도 다 돈이라며 가져가라고 성화를 부렸다. 어제 오랜만에 얼굴도 볼겸 인천으로 향했다. 그녀가 이것저것을 다 내주었다. 그렇게 내주고 어찌 살지 걱정이 되어 “그렇게 다 주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정말 안 쓸 것 같은 것만 줘”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는 살림을 안할 듯한 기세로 세간살이를 트럭 가득 실어 놓았다. 세간을 트럭에 실어 놓고 밥을 먹으러 소래포구로 갔다. 그녀의 차를 탔다. 작은 차로 바뀌었다. 그녀는 작은 차도 괜찮다며 웃었다. 아우디, 벤츠, 도요타 다 타봤지만 기름값 덜 드는 차가 최고란다. 설핏 아픔이 묻어났다. 회를 먹고 그녀의 집으로 올라갔다. 미리 준비해 온 봉투를 그녀가 발견하지 못하도록 양치컵에 넣었다. 그녀는 내려가면서 마시라며 음료수를 사서 차에 실어준다. “잘 살아~”라는 말을 남기고 시동을 걸었다. 고속도로를 접어들며 그녀에게 문자를 했다. “화장실 컵 속에 봉투 놓고 왔다. 많지는 않지만 이사비용에 보태라~.”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다시 문자가 왔다. “잘 쓸게! 눈물 날 것 같아~.” 문자들이 툭툭 튀어나올 것 같아 얼른 핸드폰을 뒤집었다.

저녁노을이 백미러에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고 백미러에 써 있다. 노을이 가깝게 다가온다. 그녀가 살고 있는 인천이 자꾸만 멀어진다. 그녀는 내게 하나뿐인 동생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