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국립묘지에 묻힌 백제의 전사들
최초의 국립묘지에 묻힌 백제의 전사들
  • 김명철 <청주서경중학교 교감>
  • 승인 2015.07.0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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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 김명철 <청주서경중학교 교감>

5세기 전반 고구려는 장수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남진정책을 펴게 된다. 이때 고구려에 위협을 느낀 백제와 신라가 맺은 동맹이 나제동맹인데 433년 백제 비류왕과 신라의 눌지왕이 처음 손을 잡은 후 백제 성왕이 관산성(管山城·현 충북 옥천)에서 신라와 전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는 6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나제동맹은 처음 목표와는 달리 호시탐탐 한강유역으로의 진출을 노리던 신라의 계획에 따라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470년에는 신라가 소백산맥을 넘어 보은에 삼년산성을 쌓아 청주지역까지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4세기 후반 고대 왕국의 전성기를 지나 5세기의 백제는 북쪽에서부터 내려오는 고구려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신라를 물리치기 위한 전쟁으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 바로 청주시 무심천 가에 위치한 신봉동 백제 무덤 떼이다. 현재 청주 백제유물전시관이 자리 잡은 뒤쪽의 나지막한 산에 분포하는 백제지역 최대의 무덤유적이며, 사적 3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의 상황을 비추어 보면 아마도 전쟁과 관련된 백제 전사 집단의 공동무덤으로 생각된다. 

나라를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지금의 국립묘지와 같은 곳은 아니었을까? 가족을 지키고, 때로는 지역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한 분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신봉동에서 확인된 널무덤은 300여 기가 넘으며, 돌방무덤 3기 외에 화장 묘 14기도 조사되었다. 

널무덤들은 구릉 전체에 분포하며 4세기 무렵부터 만들어졌고, 돌방무덤은 이보다 약간 늦게 만들어졌다. 이 무덤들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갑옷, 철제무기류, 뚜껑 접시 등은 가야와 왜의 유물들과 비교되어 당시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백제세력이 한강유역과 금강유역의 여러 집단은 물론 멀리 가야와 바다 건너 왜 세력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9년에 착공해 2001년 11월29일 개관한 백제유물전시관은 군인들의 흔적뿐만 아니라 청주지방의 선사문화와 역사, 백제사 연표, 백제 무덤의 종류, 삼국시대 지배층의 무덤, 무덤 축조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아울러 백제의 사상과 신앙, 널무덤 재현 과정, 충청북도 지역 고대유적 분포도, 신라의 무덤과 통일신라 시대 소경의 하나였던 서원경과 백제의 관품과 복색 등 우리 지역에 대한 오랜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 정체성 교육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뿌리와 고장에 대한 정체성을 알게 하는 일이다. 

시간을 내어 우리 아이들과 함께 나라 사랑을 실천한 분들의 흔적을 찾아가 보자.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고장에 대한 자긍심도 키우고, 나라 사랑을 실천하다 장렬히 산화한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최초의 국립묘지인 백제유물전시관과 대전현충원을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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