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5.07.0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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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꿈속의 나 :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 화장실을 가라.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엊저녁에는 술도 안 먹었고, 목욕탕에서 땀도 많이 흘려 오줌이 마려울 리 없어. 꿈이야, 거짓이야.

꿈속의 나 : 아니, 그러면 지금 느끼는 통증은 거짓이란 말이야? 오줌보가 터질 것 같지 않아?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 그래도 생각해봐라. 

오줌이 마려울 일이 없잖니? 목욕탕 다녀온 날 새벽에 오줌이 마려울 수 있느냐고? 맥주를 마시지도 않았잖아?

꿈속의 나 : 감각에 충실해라.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 꿈속의 감각을 어떻게 믿냐? 꿈속의 촉감이 언제 가짜라고 하더냐? 그 촉감은 너무도 생생하지 않더냐? 여인의 손길도, 진흙에 빠진 발도, 깨어나면 비로소 아니라고 생각하지 꿈속에서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있느냐? 

꿈속의 나 : 그러면 너는 새벽에 어떻게 화장실에 갔니? 몸이 감각을 느끼고 깨어나라고 신호를 주는 것 아니겠니?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닐 거야. 난 어젯밤을 기억한단 말이야.

꿈속의 나 : 그럼 오줌을 한 번 눠봐.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야, 그러다가 오줌 싸면 어쩌려고? 

꿈속의 나: 그러니 일단 일어나. 그러면 되잖아.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아니야. 한 번 일어나면 잠이 깰 것 같아. 일도 많은데 한숨 더 자야 돼.

꿈속의 나 : 뭘 그러냐? 일어나봐.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 아냐, 참으면 참을 수 있어. 

일어나는 것도 버릇이래. 참고 자 버릇하면 괜찮데.

꿈속의 나 : 너도 나이가 있잖아. 이제는 새벽에 한 번은 일어나도 괜찮잖아?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 아니야. 그냥은 아니야. 더욱이 사우나를 한 날은. 

꿈속의 나 : 어린 아이가 왜 오줌 싸겠니? 꿈과 생시를 구별 못 하기 때문 아니냐? 

그런데 너는 꿈과 생시도 구별 못 할뿐더러 꿈속의 너조차 믿지 못하는구나?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 나도 믿고 싶어. 

그러나 난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누리지 못했어. 현실이 될 때 늘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거든. 안타까워 다시 그 꿈을 누리려고 잠을 청하지만 꿈은 달아나고 말아. 내 꿈은 내 편이 아닌가 봐.

꿈속의 나 : 안 됐구나, 쯧쯧. 좋은 꿈이라면 나도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건 통증이야, 통증! 어서 일어나.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 제발 즐거울 때도 이렇게 나를 설득해주렴. 깨어나지 않도록. 

아픈 꿈에서 고통이 사실이라고 말하듯, 좋은 꿈에서는 꿈이니 마음껏 즐기라고 해다오.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에서는 깨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야.

꿈속의 나 : 그건 네 일이지, 내 일이 아니야.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 : ‘이건 꿈이니 즐겨라’고 하는 나는 어디에 있니? 너니 나니? 아니면 너도나도 아닌 또 다른 나니? 

쾌락의 나는 도대체 어디서 잠자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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