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잎다비
연잎다비
  • 이은희 <수필가>
  • 승인 2015.06.29 1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이은희 <수필가>

백련을 우려 차를 음미한다. 꽃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우아한 자태를 간직한다. 

우유빛 꽃잎과 꽃술, 덜 여문 연밥까지 그대로다. 자태도 곱지만, 무엇보다 향기를 간직하여 인간을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입안에 감도는 쌉쌀함과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연꽃 향이 그의 품격을 높인다. 눈앞에 잎들 틈새로 꽃송이가 하늘로 향하여 구름처럼 피어오른 넓디넓은 연밭 풍경이 그려진다. 차를 마시던 지인은 한술 더 떠 연꽃에 푸른 연잎을 함께 두면 좋겠다고 권한다. 

활짝 핀 연꽃에 초록 잎을 더하니 생기가 돈다. 이어 연잎을 띄우고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지인은 연밭을 옮겨놓은 듯 좋다고 파안대소한다. 이것도 잠시, 다기에 잠긴 연잎 줄기 끝에서 기포가 뽀글거린다. 

이어 줄기는 둥근 잎 위로 커다란 물방울 한 점을 끌어 올린다. 초록 연잎 위에 부유하는 투명한 물방울. 연잎의 눈물인가. ‘눈물은 무언가 몸 안에 가득할 때 넘치듯 흘러나온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끓어오르는 감정이 몸 밖으로 범람하는 것’, 그것이 눈물이란다. 바라보자니 왠지 모를 슬픈 온기가 감돈다. 보다 못한 지인은 연잎을 꺼내 다탁에 올려놓는다. 

푸르죽죽한 잎의 한구석은 이미 마른 상태이다. 방안에 자연을 옮기고자 한 인간의 이기심은 연잎에 가혹한 짓을 벌인 것이다. 

조금 전까지 정성을 다하여 연꽃을 섬기고 있었던 연잎이다. 사랑은 구원 없는 종교라 했던가. 제 뜻과 다르게 뜨거운 물 지옥(불가마)에 떨어져 몸 안 진액을 쏟아놓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차(茶)의 세계에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이 있다. ‘일생에 단 한 번 만남의 인연’이라는 뜻이다. 생애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기면, 어찌 순간을 함부로 흘려보내랴. 그 대상이 인간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국한을 두지 않는다. 인간은 소멸을 두려워하나, 연잎은 한 치의 두려움 없이 스러져간다. 연잎의 다비(茶毘)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나는 차를 목으로 넘기지 못한 채 목울대만 쿨렁거린다. 이 아픈 머무름을 거부할 생각이 없다. 빈 잔에 가득 찬 고요가 오래도록 출렁거릴 것 같다. 



# 연꽃=뜨거운 여름 햇살 속에 피는 연꽃은 아시아 남부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가 원산지이다.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한 식물로 불교에서 상징적 의미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연잎을 차로 만들어 마시면서 고소득 농작물로 수용돼 논밭에서 재배하기도 한다. 잎은 뿌리줄기에서 나와서 높이 1∼2m로 자란 잎자루 끝에 달리고 둥글다. 물에 젖지 않으며 잎맥이 방사상으로 퍼지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7∼8월에 피고 홍색 또는 백색이다.

연꽃 종 백련은 차꽃으로 유명하다. 흰 연꽃으로 불리는 백련은 이른봄 잎이 돋기 전에 희고 향기 있는 종 모양의 꽃을 피운다. 가을에 갈색의 열매가 익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