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 원칙의 함정
다수결 원칙의 함정
  • 장선배 <충북도의원(청주 3)>
  • 승인 2015.06.2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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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장선배 <충북도의원(청주 3)>

최근 청주시의회에서 새 상징마크(CI)를 둘러싸고 여야 의원들 간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새 CI에 대한 내용은 접어두고, 절차적인 측면에서 보면 갈등의 원인은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로 집약된다. 상임위에서 부결된 안건을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본회의에 부의해 통과시켰다. 지방자치법에는 의장이나 재적의원 1/3 이상이 위원회서 부결된 안건을 본회의에 부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어 법적인 하자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의회제도가 위원회 중심이기 때문에 상임위 결정을 본회의에 부의해 뒤집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상임위 부결 안건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은 이를 주도한 세력이 청주시의회 내 다수당이었기에 가능했다. 다수결 이라는 의사결정 방식을 활용해 수의 힘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필자도 의정활동 과정에서 매번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지난 6월 에 있었던 충북도교육청 추경예산안 심사때에 예결위 계수조정에서 예산안 삭감 여부를 다수결로 결정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압도적인 다수이고, 이미 의사결정을 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소수가 낸 다른 의견으로 바뀔 가능성은 없었다.

다수결 원칙이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잘못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은 개개인의 의견을 모두 일치시키는 합의제이지만,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선의 방법인 다수결을 사용하고 있다. 

다수결 방식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내용과 형식, 진행과정이 모두 민주적이어야 한다. 또 의사결정과 관련된 모든 자료가 공개되고 자유로운 공개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 모두가 독립적인 개체로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수결 원칙을 적용하기 이전에 절충과 타협이 필수적인 선행조건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회의체에서 이런 다수결 원칙의 전제조건은 대부분 무시된다. 최종 의사결정에는 다수라는 힘의 논리만 적용되기 일쑤다. 모든 자료가 제공되기도 어렵고 토론을 한다 하더라도 결과가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니 소수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지고 소수는 결국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게 된다. 다수는 다수결 원칙이 합법적이라고 하고 소수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청주시의회의 CI 갈등 과정이 꼭 그렇다. 다수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논리적인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다수결 원칙으로 밀어 붙였다. 형식상 다수결 원칙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소수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논리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는 다수의 힘에 부딪치자 본회의장 점거농성이라는 다른 방식의 저항을 선택했다. 

개개인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경우도 많다. 청주시의회 여야 합의문에는 ‘의사 진행을 함에 있어서 의원 개개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며…’라는 문구가 있다. 개인의 판단이 다르더라도 당론에 모두 따르라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새 CI에 대한 찬성,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다수결 원칙을 민주주의 의사결정 방식이라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다수결 원칙은 다수의 힘의 횡포를 민주주의로 포장해 주고, 법적인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제도로 활용될 뿐이다.  

다수결 원칙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고, 다수결 적용 이전에 절충과 타협이 먼저다.  다수결 원칙 너무 좋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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