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갱이 잡던 날
올갱이 잡던 날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5.06.2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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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수필가>

웃음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자꾸 반복되는 웃음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헷갈린다. 강원도를 향해 출발하면서 동생이 미리 말을 해주어 알고는 있었지만, 반신반의 했었다. 설마 그렇게 많을까. 헌데 가고자 했던 곳에 도착해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니 기가 찼다. 많아도 너무 많다.

양파 자루를 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청주근교에서는 이삭 줍듯이 했는데 여기서는 알곡을 터는 것 같았다. 한 움큼씩 잡아 올릴 때마다 신기해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물에 젖는 것이 싫어 허리를 굽히고 올갱이를 잡는 나에게 동생은 그냥 물속에 주저앉으란다. 한 곳에 앉아 몸만 돌려가며 건져 올려도 자루는 금방 찼다. 

내가 처음 올갱이국을 먹어 본 것은 결혼 초였다. 비릿한 맛이 입에 맞질 않았다. 나와는 다르게 시집식구들은 무척 좋아해 수시로 올갱이국을 끓여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시어머니께서 올갱이를 잡아오셨다. 나보고 국을 끓이라며 나가셨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된장을 풀어 물이 끓자 올갱이를 넣었다. 그리고 아욱을 넣고 양념을 추가했다. 밥상을 차려 안방으로 들고 갔다. 국을 조심스레 떠올리던 시부모님의 표정이 야릇했다. 처녀 적부터 요리에는 자신 있던 사람인데 무슨 일일까 의아했다. 국 대접 속에는 까만 올갱이들이 수두룩했다. 올갱이를 삶아 건져 속을 빼야 하는데 그 부분을 놓친 것이다. 그냥 웃기만 하는 식구들 앞에서 혼자 무안했다. 그때부터 나는 시나브로 올갱이국에 중독이 되어 갔다. 누군가 올갱이 잡으러 가자는 말만 떨어지면 따라나섰다. 물속을 드려다 보며 잡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먹을 때의 쌉쌀한 맛도 좋았다.

점심 전부터 시작한 올갱이 잡이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근동에 산다는 중년여인을 만났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며 멀리서 왔으니 많이 잡아가라 한다. 잡아도 잡아도 많단다. 남의 동네까지 와서 잡아가느냐고 타박을 하면 어쩌나 속으로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물속이 깊으니 조심하라고 염려까지 해준다. 나하고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가 사는 곳은 산속 마을이다. 봄이면 나물을 뜯으러 오거나 가을에는 밤이나 도토리를 주우러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이방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못마땅했다. 내 영역을 침범당해 빼앗기는 것 같은,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었다. 그들에게 뱀도 있고 곤충도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강원도에서 만난 그 여인들도 당연히 나와 같은 심정일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햇볕이 강해 등을 따가워도 물속에선 춥다. 올갱이는 세 개의 커다란 들통에 한 가득 이다. 대신 허리가 펴지지 않는다. 동생 내외가 나를 보고 웃으며 한마디 한다. 

“타도에 와서 욕심이 과했슈!”

여기저기 나누어 줄 생각과 그곳에서 만난 여인들의 따뜻한 배려에 뭉클했던 감동,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이 이기적인 내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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