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지오 일본 정원과 어벤저스
벨라지오 일본 정원과 어벤저스
  • 강우성 <파워블로거>
  • 승인 2015.06.2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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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 강우성 <파워블로거>

휘황찬란한 조명의 카지노, 현란한 몸짓과 화려한 장식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이국적인 무희들,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빅 밴드 재즈의 선율로 가득한 라스베이거스는 미국이 자랑하는 가장 미국적인 관광 명소 중 하나로 매년 무려 4000만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아와 그 열기에 흠뻑 취한다고 한다.

라스베이거스의 중심가인 스트립(Strip)에 위치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급 호텔인 벨라지오는 지난 봄 로비 전체를 일본풍 정원으로 꾸며놓고 손님을 맞이했다. 일본의 정원 장인이라는 노무라 간지의 설계 하에 무려 8만 송이가 넘는 꽃을 공수, 일본의 전통 망루와 건축물을 함께 놓아 일본의 향취에 흠뻑 빠지게 구성해 놓았다고 하니, 마치 일본의 한 마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와 더불어 호텔 로비 천장에는 미국의 인간문화재인 데일 치훌리의 유리공예 작품과 함께 어우러져 경탄을 자아내고 있으니 미국의 문화에 일본의 문화가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는 모습이 참으로 부러울 따름이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음력 설이 되면 Chinese New Year를 기념한다며 벨라지오 호텔은 다시 한번 중국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전 세계 관광객들은 자의반 타의반, 일본과 중국 문화의 포로가 되어 연방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아쉽게도 한국의 미(美)는 이곳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미국에서 관광객들이 한국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어지럽게 뒤덮인 한글 간판만 즐비한, 식당과 술집 가득한 코리아타운 뿐이 아닐까.

얼마 전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가 촬영장으로 서울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무려 39억원이라는 파격적인 지원금이 제공됐고 시민들의 불편을 무릅쓰고 2주에 걸친 도로 통제 및 각종 혜택을 주었다. 이를 통해 2조원에 달하는 한국 홍보 효과가 있을 것이라던 장미빛 예측과는 달리 영화를 통해 비춰진 서울의 모습은 한국의 멋은 커녕 되레 낙후된 모습이며 헛물만 켠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최대의 수혜자가 바로 간판이 노출된 모 식당이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애초에 한국 홍보를 위해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멋진 서울의 모습을 담아달라”는 두리뭉실한 요구라 하기에도 뭐하고 부탁이라 하기에도 뭐한 말로 무조건 믿고 맡긴 것이 이러한 결과를 야기했을 것이다. 실리를 챙긴 것은 어벤저스를 제작한 마블사이다. 한국 팬들의 애국심을 교묘히 자극해 마케팅에 성공했고 제작비 또한 두둑히 탕감받았으니.

벨라지오의 일본 정원을 보며 39억원의 10분의 1도 안 되어 보일 듯한 비용으로 몇십 몇백배에 달하는 홍보 효과를 얻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홍보 전략이 좀 더 세련되고 정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단지 문서상으로 남기기 위한 탁상행정에서 벗어나 글로벌한 시각을 가진 이들의 분발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벨라지오의 관광객들의 사진첩 속에는 일본과 중국만이 가득할 것을 생각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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