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담쟁이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6.2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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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저 무성한 잎들의 근원도 발밑의 작은 뿌리에서 시작합니다. 가는 줄기에서 손톱처럼 삐져나온 여린 촉들이 거대한 초록 생명으로 자라기까지는 ‘나’에서 출발해 ‘우리’로 모였기 때문입니다. 두터운 콘크리트벽도 이처럼 싱그럽게 넘을 수 있는 것도 수천 개의 잎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절망의 이면에는 희망이 있음을 담쟁이는 몸으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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