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各自圖生)하라!
각자도생(各自圖生)하라!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5.06.2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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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윤승범 <시인>

먼 옛날로 갈 것도 없습니다, 1950년 625 전쟁 때였습니다. 저 혼자 살겠다고 전쟁 초기에 대구까지 피난을 갔다가 너무 멀리 도망 온 것 같다는 신하들의 충언(忠言)에 다시 대전까지 거슬러 올라왔던 유명한 대통령이 거룩한 목소리로 일갈했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을 것이다. 그러니 한 민족 백성이여 뭉쳐라. 뭉쳐서 오랑캐를 무찌르라’ 했습니다. 그리고 한강 다리를 끊어 놓고 거기에 석 달 동안 갇힌 백성들을 ‘부역자’라 해서 처벌했습니다. 난리가 나도 저만 살면 되었고 경제가 파탄이 나도 인의 장막에 가려 허튼 방구만 뀌어도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치사를 들었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 수난기에 우리 백성들은 제 각각의 삶의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 땅의 통치자들이 백성의 안위를 제 일선에 두는 꼬라지를 못 보았던 역사의 한 조각이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 병자호란 때였습니다. 강대국 청나라에게 대의적 명분을 잃지 않겠다고 뻣대다가 결국은 치욕스러운 침공을 겪고 항복을 하고 그 와중에 백성들은 죽어 나갔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얼마인지 알 수 없고 다만 끌려간 백성이 50만이라는 추정뿐입니다. 나라에서는 인질로 잡혀 간 백성의 귀환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당파의 분열과 정권의 창출만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나마 살아 돌아온 아녀자들에게는 ‘환향녀(還鄕女)’라는 딱지를 붙여 결국은 ‘화냥년’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게 이 땅의 위정자들의 작태였습니다. 이 땅의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민초(民草)들은 그렇게 각자 저마다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나라에 바쳐야 할 것은 세금이었으며 병역(兵役)은 덤이고 그 댓가로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은 복불복 가외였습니다. 힘 없는 백성이 받는 혜택은 결국은 ‘각자 살아남으라’는 지상의 명령일 뿐이었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는 낙타고기와 낙타유를 먹지 말라는 지극히 효과적인 처방이 내려졌고 백성들은 거기에 따랐습니다. 

그러나 전염병은 여전히 돌고 있고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준동할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전염병에 대해 떠드는 자들은 유언비어의 유포자가 될 뿐이고 모두 하얀 마스크 하나씩만을 구명조끼처럼 의지한 채 숨만 쉬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어디쯤에서 그치고 멈출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로지 지상의 명령 하나만 덩그라니 남았습니다. - 각자 살아남아라! 살아남아야 새로운 정권의 창출에 필요한 표가 하나 생존할 것이고 죽은 뒤에는 아무 쓸모 없는 사표(死票)일 뿐일테니까요.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오직 그거에 있나 봅니다. 육이오 난리통에 살아남아 ‘부역자’가 되었듯이 이 난리에도 살아남아 오직 나라에 세금과 병역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한낱 ‘나부랑이’로 남기 위해 우리 모두는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때 움직이면 불경(不敬)이 되고 움직이라 했을 때 움직이면 선동(煽動)이 되는 그런 암울한 백성으로 우리는 살아남았고 살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살아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침묵의 시대가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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