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그렇구나!
  • 정상옥 <수필가>
  • 승인 2015.06.23 1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 상 옥

수필가
정상옥 <수필가>

묵정밭 둔덕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망초꽃 무리가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이니 가히 환상적이다. 이효석은 메밀꽃 밭을 보고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하다고 표현했지만 내 눈에 펼쳐진 망초꽃 밭은 첫눈이 흩날리는 날처럼 설렘이 먼저 인다.

망초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몇 년 전 일이 떠올라 빙긋이 웃음이 나온다. 그날도 바람을 쐬러 나왔던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얀 망초꽃 언덕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들꽃을 좋아하는 내가 그곳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어 남편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망초꽃 하얀 무리 속에 붉은빛의 몇 송이 색다른 꽃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망초꽃 무리에서 더부살이하는 꽃을 발견한 설렘은 벌써 차창으로 몸이 반쯤은 나와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힐끗 쳐다보고는 묵묵히 앞만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닌가. 저만큼 멀어져간 꽃밭을 향해 몸을 돌리며 왜 차를 세우지 않느냐고 언성을 높이다 보니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작은 풀꽃 하나 앞에서도 가슴이 설레는 아내의 감성에 동조는 못해도 잠깐 차를 세워 꽃을 보고 가자는 청을 무시하는 매정한 태도에 점점 더 부아가 치밀었다. 그때부터 내 심연의 깊은 곳에 쌓아놓고 침잠되어 있던 불만의 감정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모처럼의 나들이가 결국 부부싸움이란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남편은 교외로 나올 때마다 허접한 들풀에 발목을 잡히고 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아내의 감성이 호들갑을 넘어 주접으로 보였다 했고 나는 그런 감성하나 지니지 못한 목석 같은 남자와 수십 년을 살면서 내 삶이 얼마나 팍팍했는지를 조목조목 들추며 맞섰다.

한참을 서로의 단점들만 들추며 자존심을 흔들다 보니 차는 어느새 싸움의 발단이 된 망초꽃 밭 앞에 다시 와 있었다. 그 환한 꽃밭이 환상처럼 눈앞에 펼쳐져 가슴이 두근댔지만 또다시 주접은 안 떨리라 눈을 돌리는데 남편은 슬며시 꽃밭 옆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망초꽃 사이로 저벅저벅 들어갔다 나오더니 한 움큼의 꽃을 내밀었다. 그 속에는 아까 궁금해하던 붉은빛의 꽃도 들어 있었다. 그것은 코스모스였다.

“코망초 꽃이야….”

꽃 이름도 모르느냐는 반박을 할까 하다가 앙증맞은 망초꽃 속에서 다홍빛 코스모스가 환히 웃고 있는 것 같아 입을 닫고 마음보다 손이 먼저 가서 덥석 받고 말았다.

“망초꽃이 하얗게 흐드러지게 피어난 그곳에서 색다른 꽃이 피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계절을 뛰어넘어 피어나도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뤄가는 자연처럼 부부도 서로 다른 성격과 감성을 지녔음에도 서로에게 길들여져 세월 속에 익어가며 사는 거야. 빛깔이 다른 코스모스와 망초꽃이 함께 꽃밭을 만들 듯 너와 내가 함께 살면서 우리라는 인생의 꽃밭을 이뤄가는 거고.”

목석 같은 남자라고 타박하던 내 심성이 아집이고 독선이었음을 자각하는 순간 금세 옹졸하게 뒤틀려 있던 마음이 망초꽃 밭처럼 느슨해졌다.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들꽃이 각양각색으로 피어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아름다운 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줄 아는 아량과 배려가 어우러진 자연의 조화였음을 깨우치던 날이었다. 가끔은 바람이 불어와 또다시 들녘을 흔들어 놓는다 해도 때가 되면 다시 또 그 자리에 꽃은 피어나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