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의 전쟁이 준 교훈
까치와의 전쟁이 준 교훈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5.06.23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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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임성재 <칼럼니스트·시민기자>

두어 달 전부터 까치의 공격이 시작됐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와 몸을 유리창에 부딪치고 부리로 요란스럽게 유리를 쪼아댄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새벽에는 깜짝 놀라 잠을 깨곤 한다. 윗집에서도 잠을 깰 만큼 요란하다. 그때마다 뛰어나가 쫓아 보지만 그 때 뿐이다. 하루 종일 드나들며 유리를 쪼아대는 것이 스트레스가 될 정도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하얀 똥을 집안 곳곳에 흩뿌려놓아 화를 돋운다.

집에 쳐들어오는 까치는 한 쌍이다. 가족인 듯하다. 한 마리는 꽁지가 짧아 볼품이 없다. 또 한 마리는 검은 털로 뒤덮인 목덜미가 유난히 굵고 머리가 커 당당한 모양새다. 까치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적이 없는데 동그랗게 부릅뜬 눈이나 아랍 칼처럼 날카롭게 휜 부리는 위협적이다. 쫒아나갈 때 도망가는 모습도 화급하지 않다. 유유히 날아 마당 앞 밤나무나 전봇대에 옮겨 앉아서 까악까악 울어대며 또다시 공격할 기회를 엿본다.

까치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먼저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워 놓았으나 허사였다.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허수아비 위에 올라앉아 유리를 쪼아댄다. 이번엔 그물망을 사다가 유리창을 덮었다. 그물 앞에서는 잠시 머뭇거리는듯하더니 이내 그물에 매달려 유리를 쪼아댄다. 발판만 만들어 준 셈이다. 동네 사람들과 대책회의를 열었다. 119에 부탁하자, 까치집이 매달려 있는 나무를 베어 까치집을 없애자, 공기총을 빌려 사살하자는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 귀찮다고 까치를 잡을 수는 없었다. 원래 이곳의 주인은 지금 날아드는 까치를 비롯해 숲에 사는 동물들이었을 텐데, 집을 짓느라 그들의 보금자리를 훼손한 보상은 못해 줄망정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 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한 후배가 버드 세이버(Bird Saver)를 붙여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새들은 유리에 비친 나무나 숲, 하늘을 실제 모습으로 착각하고 날아들다가 유리와 충돌하는데, 매나 솔개 모양을 본떠 만든 버드 세이버를 붙여 놓으면 새들이 맹금류로 착각하고 유리창을 피해간다는 원리다. 유럽에서 시작한 버드세이버 운동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 수소문한 끝에 한국조류보호협회에 버드 세이버를 신청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유리창에 붙였다. 며칠간은 버드세이버의 효력이 있는 듯 했다. 이제 까치와의 전쟁이 끝났음을 선포하려던 어느 날 아침, 평소보다 더 큰 충돌음이 들렸다. 뛰어 나가보니 까치가 버드세이버를 향해 온 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 똑똑한 까치다. 버드세이버가 모형임을 알아 챈 것이다. 그 날 이후 까치의 공격이 대폭 줄어들기는 했으나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멈춘 것은 까치와의 전쟁이었다. 산란기에 알을 낳기 위한 장소를 온 몸으로 찾고 있는 까치들의 보금자리를 빼앗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젠 전쟁이 아니라 까치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너무 쉽게 자연을 파헤친다. 산을 깎아내 골프장을 만들고 집을 짓고, 도로를 만들고,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고, 터널을 뚫는다. 그러나 예로부터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동식물들의 생존이나 생태환경에는 무감각하다. 이런 현상은 대규모의 개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골에 작은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꿈꾸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다.

시골 생활을 시작한지 4년째지만 동식물들이 나와 함께 이 자연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치 내가 주인인양 행세하고 있었다. 유리창을 공격해온 까치와의 전쟁을 치루면서 이 자연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에서의 삶이란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함께하고 공유하는 나눔의 삶이 아닐까? 까치가 준 교훈이다. 내년 봄에는 새 집을 여러 채 만들어 걸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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