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표절보다 몰염치
문제는 표절보다 몰염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06.2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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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대한민국이 ‘표절 공화국’으로 불리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중국의 맹렬한 추격으로 최근 종주국 지위가 흔들리곤 있지만 ‘짝퉁’을 독보적 분야로 구축하며 관광객 유치에도 활용해온 우리다. 남의 재주를 베끼는 재주의 탁월함. 국내적으로 이 오명을 고착시킨 것이 인사청문회였다. 청문회 초기에는 표절행위가 제법 부끄러운 흠결로 여겨졌다. 구차한 변명과 하소연을 남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낯을 붉히며 스스로 물러나는 인사가 더러 있었다. 그런데 청문회에 서는 인물들마다 없으면 마치 결격사유라도 되는 것처럼 논문표절 전력을 목에 걸고 등장하다보니 어느 때부턴가 별 것 아닌 것이 돼버렸다. 위장전입, 다운계약, 군징집면제 등이 같은 과정을 거쳐 ‘못하면 등신’인 것처럼 돼버렸듯이 말이다. 

의혹을 받는 당사자들은 ‘왜 나한테만 추궁이냐’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지경이 됐다. 피땀으로 일군 남의 지적 자산을 도적질하는 추악한 절도행위가 더 이상 단죄의 대상이 되지않는 사회에서 매사에 ‘창조’를 접두어로 사용하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재능을 나누고 공유하는 미풍양속으로 굳어져가던 표절 행위가 요즘 문단에서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신경숙씨가 자신의 소설 ‘전설’에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우국’ 일부를 표절했다는 의심을 사면서부터다. 신씨의 다른 작품들까지 표절 혐의를 받으면서 파장이 문단 밖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1년 내내 소설 한편 읽지못하는 사람들도 ‘문학’은 종사자들의 창작적 열정과 결과물로 유지되는 분야임을 모르지 않는다. 베끼기로 숙제를 대신하는 대학생에서 제자의 논문에 슬그머니 이름을 올리는 학자에 이르기까지 세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표절이 난무하는 세상이 됐다 하더라도 표절이 세균처럼 기피당하는 양심적인 영역이 한 두곳 정도는 존재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작가들의 세계인 문단이야말로 도둑질에 수치를 느끼지 않는 몰양심의 세태에 끝까지 저항할 대표적 공간으로 믿고싶어 한다. 더욱이 신씨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면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거느리며 문단의 얼굴로 군림해온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서 표절 시비가 발동했으니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신씨가 밝힌 딱 세줄짜리 해명문이다. 

그는 “읽어 본적이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을 알지 못한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해석이 분분할 터이지만 “그래 표절했다고 치자. 어쩌란 말인가? 내게 돌팔매질 할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는 항변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러나 그가 논란을 회피한다고 해서 상처를 입지 않을 것 같지는 않다. 그로 인해 문단은 옹호와 비판의 진영으로 갈리기 시작했고 한 연구단체 대표의 고발로 검찰에 불려갈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신씨는 자신이 입게 될 상처보다 그동안 그에게 신뢰와 성원을 보내온 독자들이 입을 상처를 걱정해야 했다. 미시마의 소설보다 남의 재주를 훔치고도 당당한 문단 밖의 파렴치한 세태를 표절한 해명의 대목에서 독자들은 더 실망하고 있다. 

그녀의 당당한 대응은 표절이 일상화한 현실과 무관치않아 보인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후안무치의 세상에 대한 조소로도 비쳐지는 이유다. 문단에서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표절을 주제로 한 쟁론이 폭넓게 형성될 분위기다. 문단의 담론이 밖으로도 확장돼 표절을 포함한 온갗 허물을 뒤집어쓰고도 주저없이 총리나 장관을 맡는 몰염치한 세태를 반추하고 성찰하는 계기도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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